네스토르 바르가스(38)와 루이스 호세 세르파(21)는 페루 수도 리마의 '코로나 장의사'다. 주 7일, 하루 19시간 방독면을 쓰고 방호복을 입고 시신을 치운다. 앰뷸런스를 불러도 오지 않는 빈민가를 돌며, 코로나에 감염될까 봐 가족들도 꺼리는 시신을 담요로 싼 뒤 종이 판자로 만든 관에 넣어 가급적 빨리 화장터로 보내는 게 이들의 일이다.

두 사람은 무너진 조국을 떠나 남미와 세계 각국으로 흩어진 460만 베네수엘라 난민 중 일부다. 고향에서 4000㎞ 떨어진 리마에서 그동안 바르가스는 운전기사로, 세르파는 바텐더로 일했다. 그 난민 생활도 지난 3월 페루 정부가 코로나 봉쇄령을 내리자 무너졌다. 벌이가 3개월 동안 완전히 끊겼던 두 사람은 최근에야 장의사 일자리를 잡았다. 하루 200여 명씩 코로나로 죽어나가는 페루에서 둘은 당분간 벌이가 있다. 하루 10여 구 시신을 처리하면 한 달에 500달러(약 60만원), 페루 최저임금의 두 배 가까운 돈을 벌 수 있다. 세르파는 "그저 하루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산다"고 했다.

베네수엘라 접경 콜롬비아의 쿠쿠타에서 지난달 14일 방역요원이 베네수엘라인들의 가방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코로나 실직으로 베네수엘라로 되돌아가려는 이 난민들은 물과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국경 시설에서 마스크도 없이 붙어 지내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 CNN이 20일(현지 시각) 보도한 베네수엘라 난민의 모습이다. 번듯한 고국도, 그나마 있던 일자리도 사라진 난민들은 타국의 코로나 장의사 일자리조차 감지덕지할지 모른다.

알레이디 디아즈(28)는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 페루 리마의 길거리에서 생수와 간식을 팔고, 남편은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다. 하지만 코로나 외출 자제령이 떨어지면서 세 아이와 디아즈 부부는 돈 한 푼 없이 집에 격리된 신세가 됐다. 유엔난민기구는 디아즈처럼 생활고에 시달리는 난민 중 일부는 "생존을 위한 성매매(survival sex)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20년 넘게 이어진 전임 대통령 우고 차베스와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의 좌파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은 석유 매장량 1위 베네수엘라의 국민 8명 중 1명을 영양실조로, 6명 중 1명을 난민으로 내몰았다. 살기 위해 베네수엘라를 떠난 난민들은 고국에서의 학력이나 경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페루에 와 있는 베네수엘라 난민의 57%는 고등교육을 받은 인력이지만 주로 식당 종업원이나 택시기사 같은 저임금 서비스업에 종사했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가장 먼저 없어진 일자리들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의 버스터미널 근처에선 집세를 내지 못해 쫓겨난 베네수엘라 난민 430여 명이 노숙을 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굶더라도 고향집 지붕 밑에서 굶겠다"며 베네수엘라로 돌아온 역(逆)난민이 6만명이지만,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도 녹록지 않다. 지난달까지 코로나 확진자가 하루 200명대였던 베네수엘라는 이달 들어 600명대까지 치솟아 누적 환자가 1만5000명에 가깝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집으로 돌아오는 당신들 때문에 가족들이 죽는다"며 돌아오려는 사람들을 "적국(敵國)이 뿌리는 생물학 무기"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베네수엘라 정부는 콜롬비아발 입국자 수를 일주일에 105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