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기자의 강요 미수 의혹' 사건과 관련,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24일 한동훈(47·법무연수원 연구위원) 검사장에 대해 압도적인 다수로 '수사 중단과 불(不)기소'를 의결하고 이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 권고했다. 심의·의결에 참여한 수사심의위원 15명 중 10명이 '수사 중단'을, 11명이 '불기소' 의견을 내렸다. 이철(수감 중) 전 VIK 대표를 상대로 '신라젠 로비 의혹'을 취재했다가 지난 17일 강요 미수 혐의로 구속된 이동재(35) 전 기자에 대해선 '수사 계속(12명) 및 기소(9명)'를 의결했다. 이 전 기자에 대한 강요 미수 혐의는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라고 하면서도 한 검사장이 이 전 기자와 공모했다는 검찰 주장은 배척한 것이다.

한동훈, 수사심의위 출석 - 한동훈 검사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검·언 유착 의혹' 사건 관련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차를 타고 청사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정진웅) 수사팀은 이 사건을 이 전 기자와 윤석열 검찰총장의 측근인 한 검사장이 공모해 이철 대표를 상대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신라젠 관련 비리를 내놓으라고 협박한 '검·언(檢言) 유착'이라고 보고 수사해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등 여권도 이 사건 성격을 '검·언 유착'이라고 규정하고 수사를 밀어붙여 왔다. 그러나 이날 수사심의위의 결정은 '검·언 유착' 프레임을 부정하며 여권의 공세에 제동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수사팀은 '부실·편파 수사'란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이번 사건의 본질은 여권 인사들과 친정부 성향 언론이 공모한 '권·언(權言) 유착'이라는 지적에 무게가 더 실리게 됐다.

이날 수사심의위의 결정이 나오자 법조계에선 당장 "이번 수사가 윤석열 총장을 '표적'으로 한 무리한 수사였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김동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이 전 기자에 대해 "(이 전 기자가) 검찰 고위직(한 검사장)과 연결해 피해자를 협박하려 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 역시 논란이 될 전망이다.

◇"한동훈 공모 혐의 성립 안 돼"

이날 대검에서 진행된 제10회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안건은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 및 공소 제기 여부였다. 정진웅 부장검사를 포함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 수사팀, 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했던 이철씨, 이 전 기자, 한 검사장 순서로 각각 출석해 입장을 밝히고 질문에 답했다.

우선 수사팀은 지난 2월 13일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부산고검으로 찾아가 한 검사장과 나눈 대화가 담긴 '부산 녹취록'을 제시하면서 당시 한 검사장이 "그런 것은 해볼 만하다" "그런 거(취재) 하다가 한두 개 걸리면 된다"고 답한 것이 두 사람 간 공모가 시작된 시점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두 사람 간의 휴대전화 및 카카오톡 통화 내역 등을 근거로 '부산 만남' 이후에도 공모가 진행됐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수사심의위원 대부분은 수사팀이 제시한 한 검사장 발언과 통화 내역 등으론 그가 이 전 기자의 취재에 관여한 것으로 보기 힘들다고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 검사장과 이 전 기자 변호인이 "유시민씨 스스로가 강연료를 받았다고 했으니 확인해볼 만하다고 한 것이고, '걸리면 된다'는 것은 대화 말미에 '시간이 없으니 이만 나가라'고 하는 와중에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불기소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기울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한 검사장은 "이번 사건은 '검·언 유착'이 아니라 MBC와 특정 세력의 '권·언 유착'으로 기획된 공작이고 나는 그 피해자"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철 전 대표 변호인은 이날 "이 전 기자가 이 전 대표에게 '협박' 취지의 취재 협조 편지를 보내자마자 검찰이 구치소에 있던 이 전 대표를 소환 조사하는 등 '언론과 검찰이 한통속으로 움직였다'"고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서도 한 검사장과 이 전 기자 변호인은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한 '끼워 맞추기' 주장"이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이 전 기자가 처음 편지를 보내기 1년 전인 작년 2월부터 이미 이 전 대표가 개인 비리 혐의(조세 포탈)로 검찰 소환 통보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작년 2~9월 10여 차례에 걸친 소환 통보를 모두 거부하다가 이 전 기자로부터 편지를 받은 직후인 3월 12일 남부지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당시 수사 때 정치권 연루 여부 등에 대한 질문은 나오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검·언 유착' 총공세 제동

MBC가 지난 3월 31일 현 정권 골수 지지자인 '제보자X' 지모씨로부터 제보를 받아 이번 사건을 보도하자마자 여권의 '검·언 유착' 총 공세가 시작됐다.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은 자기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과 언론의 4월 총선 개입 정치 공작"이라고 했고,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도 "윤 총장이 '검언 유착' 수사에 개입하려 한다"고 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가세했다. 그는 6월 25일 한 검사장에 대한 직접 감찰을 지시했다. 그는 이틀 뒤 "본질은 검·언 유착"이라고 했다. 추 장관은 이달 2일엔 이 사건 수사 지휘에서 윤 총장은 손을 떼고 사건을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이끄는 수사팀에 일임하라는 '수사 지휘권'까지 발동했었다. 4개월간 이어진 여권의 파상 공세가 이날 수사심의위 결정으로 제동이 걸린 것이다.

심의위 결론은 권고적 효력만 있다. 그러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됐다는 관측이다. 심의위 권고대로 한 검사장을 기소하지 않는다면 수사 부실을 자인하는 것이 된다. 반대로 기소를 강행하면 재판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고 '정치적 기소'라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앞서 열린 8차례 심의위에서 수사팀은 심의위 권고를 따랐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이날 심의위 권고가 나온 뒤 "한 검사장 휴대폰 포렌식에 착수하지 못했고, 1회 조사도 완료하지 못한 상황 등을 감안해 '수사 계속' 의견을 개진했음에도, 심의위의 수사 중단·불기소 결론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 검사장은 이날 "위원회의 현명한 결정에 감사드린다"는 입장을 냈고, 이 전 기자도 "수사심의위 결정을 존중한다. 검찰 고위직과 공모하였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