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의혹을 남기고 지난 10일 숨진 채 발견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 경위와 성추행 혐의의 단서가 담겼을 것으로 지목된 스마트폰의 비밀번호가 풀렸다. 피해자 측의 제보 덕분이었다. 일각에서는 “피해자 측이 어떻게 비밀번호를 알았느냐”고 주장하지만, ‘비서실 근무자들이 지자체장의 업무용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경우는 비일비재 하다’는 것이 관계자들 설명이다.

22일 오전 서울 중구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변호사가 말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오늘 오후 유족 대리인과 서울시 측의 참여 하에 휴대폰 봉인 해제 등 디지털 포렌식 작업에 착수했다"며 "휴대폰 비밀번호를 풀어 포렌식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박 전 시장이 사용하던 아이폰XS는 2018년 하반기 출시한 스마트폰으로 보안 정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스마트폰 비밀번호를 모르면 이스라엘 셀레브라이트사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무작위로 비밀번호를 해제해야 하는데, 경찰은 애초 최소 3~4개월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런데 경찰은 보안 해제 작업에 착수한 지 이틀 만에 비밀번호를 찾았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해자를 변호하는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비밀번호를 제보했다고 알려졌다.

손혜원 전 의원이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

경찰이 비밀번호 해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여권 일부 인사들은 "피해자가 박 전 시장 아이폰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았냐"며 확인되지 않은 의문과 음모론을 퍼나르기도 했다. 손혜원 전 국회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 시장님 아이폰 비번을 피해자가 어떻게 알았을까?"라는 글을 썼고, 지지자들은 이에 호응해 "(아이폰 잠금은) 지문 또는 페이스 아이디인데 비번을 알 정도면?" "비서실 직원 모두가 비번을 알고있는 아이폰으로 대체 무슨 음란한 짓을 할 수 있겠냐" "냄새가 고약하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경찰이 포렌식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휴대폰은 서울시장에게 서울시가 제공하는 업무용 스마트폰이었다. 주로 공용 목적으로 사용하는 업무용 전화의 특성을 고려하면 비서가 시장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피해자는 2015년 7월부터 지난 4년간 서울시장 비서실에서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17일 오후 서울지방경찰청.

휴대폰은 결국 열렸지만 일단 경찰 수사는 박 전 시장의 사망 경위를 밝히는 데 제한됐다. 성추행 방조 의혹이나 고소 사실 유출 등의 추가 수사를 위해서는 휴대폰의 해당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영장이 따로 필요한데, 22일 법원은 이런 혐의에 대해서 “압수수색 필요성이 부족하다”며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