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생 장경윤입니다. 서산에서 왔슈."

"왜 이렇게 젊댜~?"

시작부터 충청도 특유의 능청이 묻어났다. 지난 7일 오후 충남 천안시 상명대 송백관.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 한글학회와 조선일보가 함께 만드는 '말모이 100년, 다시 쓰는 우리말 사전' 편찬을 위해 충남 지역을 대표한 6명이 모인 자리다. '예산말 사전'을 펴낸 이명재(58) 시인과 서산 대표 장경윤(81), 공주 김국명(76), 당진 조일형(73), 논산 권선옥(68), 세종시 임영수(56)씨. 각 지역 토박이로 꾸준히 지역 말을 연구·수집해온 고수들이다.

구락젱이(서산), 아국징이(예산), 고래구멍(세종), 아궁지(공주·논산)…. 모두 ‘아궁이’를 뜻하는 충남 말이다. 충남 천안 상명대 송백관에서 충남 말모이 고수 6명이 “우리말이 최고여!”를 외친 후 자기 지역 말을 적어 칠판에 붙였다.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시종 화기애애했다. 제일 마지막에 일어난 임씨가 "1964년생인데 여기서 제일 어린 것 같네요"라고 하자, 누군가 "어리네 어려"라고 받았다. 권씨는 "국어 교사를 정년퇴직하고 지금은 논산문화원장을 지내며 시를 쓴다"며 "논산은 전라도와 접경이라 대전 외가에 가면 '전라도말 쓴다'고 타박을 받을 정도"라고 했다.

같은 충남이라도 다 똑같은 말을 쓰는 건 아니다. '아궁이'만 해도 '아궁지'(공주·논산), '고래구멍'(세종시), '아국징이'(예산), '구락젱이' 혹은 '구락쟁이'(서산·당진) 등등 다양하다. '감옥'을 서산에선 '가막소'라고 하고, 예산에선 '가막'이라고 부른다. '죄 읎넌 늠이 왜 가막일 가겄어. 다 까닥이 있넌 벱이랑께' 하는 식이다.

옛날 충남 아이들은 '숨바꼭질'을 하지 않고 '감추기장냥'을 했다. '감추기장냥 헐 사람 요기요기 붙어라'라는 예문이 말모이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이명재 시인은 "당진·서산·아산 등 충남 서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쓰인 말이고, 공주·서천에선 '숨기장난'이라고 썼지만 사용 분포가 넓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강구다'는 어떤 대상을 특별히 보살피고 감싼다는 뜻의 충남말. '애덜을 너머 강궈주믄 커서니 암껏두 뭇헌댜'라는 예문이 올라왔다. '애들을 너무 귀여워해주면 커서 아무것도 못한대'란 뜻이다.

'말모이 100년' 실무를 맡고 있는 김형주(상명대 교수) 사무국장은 "여러분께서 단어에 얽힌 이야기를 추가해주시면 좋겠다. 낱말의 역사라든가 의미, 문화적 해설, 개인 사연 등 어떤 내용이라도 좋다"고 했다. "거시오줌이란 단어 들어보셨나요? 가슴 속이 느긋거리면서 목구멍에서 나오는 군침인데 표준어로는 거위침이라고 하죠. 흔히 '신물 난다'고 할 때 그 신물이고요." 김 국장 질문에 서산 대표 장경윤씨가 답했다. "서산에선 거시침이라고 많이 썼어요. 배 속에 기생하는 회충을 가리켜 '거위'라고도 하고 '거시'라고도 합니다. 회충 때문에 배앓이하는 것을 '거시배'라고 하죠."

'곰새기'라는 말도 있다. 간장·된장·술·초·김치 따위 물기 많은 음식 겉면에 생기는 곰팡이 같은 물질을 뜻한다. 충남 대표들은 "곰새기의 표준어는 곰팡이가 아니고, 골마지"라며 "그냥 곰팡이하고는 의미가 다르다. 유익한 곰팡이"라고 했다. 대화형 예문이 올라왔다. A: 곰새기 찐 짐치를 왜 버리덜 않넌댜?(골마지 낀 김치를 왜 버리질 않는대?) B: 냅듀. 묵은지 맹근다구 역부러 곰새기를 걷어내두 않고 있넌규.(그냥 둬요. 묵은지 만든다고 일부러 골마지를 걷어내지 않고 있어요.) 이명재 시인은 "곰새기는 '곯다' 또는 '곰'에서 온 말이다. '곰'에는 발효의 뜻이 있고, '새기'는 '삭은 것, 발효된 것'을 뜻하는 접사로 풀이된다"며 "비가 올 때 장독을 열어두면 빗물이 쳐들어서 곰새기가 두껍게 피어났는데 이를 두고 '곰새기가 쪘다'고 한다. 곰새기가 장 사이에 끼어들었다는 말"이라고 했다.

'되매기'란 단어를 놓고도 이야기꽃이 피었다. 시장에 나오는 물건을 싸게 사서 도시로 갖고 나가 비싸게 되파는 것을 '되매기' 또는 '되매기헌다'고 했다. "옛날 시골에선 되매기 장사꾼이 판을 쳤지. 물건 값을 싸게 후려쳤기 때문에 시골 장꾼의 원망을 샀어요." 이날 김 국장은 대표들에게 위촉장을 주며 "충남 단어와 예문을 잘 검토해달라"고 부탁했고, 대표들은 "사전이 나올 때까지 함께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