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정거래법과 상법 개정에 대해 경제계가 '생존 문제'라고까지 주장하며 반대하고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주요 경제 단체들이 20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입법 예고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기업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저해한다"며 공식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전날 경제계는 법무부가 입법 예고한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투기 자본의 경영권 위협 수단으로 악용된다며 '반대' 의견서를 내놓았다. 여기에 현 정부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대한상공회의소까지 "시장의 기본 룰을 존중해 달라"며 두 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서를 발표했다. 경제계가 일제히 반기를 든 이유는 무엇일까.

① 공정거래법 개정안, 문제는? - 규제 대상 기업 수 186개사에서 519개사로 늘어나

경제계는 지주회사가 가져야 하는 자회사 지분율을 높인 것을 대표적인 문제로 꼽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의 자회사, 손자회사에 대한 의무 지분율이 20%(상장사 기준·비상장사는 40%)다. 개정안은 새로 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지분 10%를 더 확보하도록 했다. 상장사 지분 30%(비상장사 50%)를 확보하도록 지분율 요건을 강화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분 매입 비용이 크게 늘어난다. 경제계는 "현재 비지주회사 체제인 대기업 집단 16곳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경우, 추가로 약 30조9000억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만약 이 돈을 지분 매입이 아니라 신규 투자에 투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일자리 24만4086개를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유정주 전경련 기업제도팀장은 "해외에서는 지주회사에 대해 시장 독점 등 사후 규제를 하고 있을 뿐, 지분율 등으로 사전 규제를 하는 것은 유례가 없다"며 "그동안 정부가 장려해 온 지주회사 전환 정책과도 상충한다"고 말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확대하는 것 역시 대표적 문제점으로 꼽힌다. 현재는 총수 지분 30% 이상(상장사 기준·비상장사는 20% 이상) 기업만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었는데, 상장·비상장 모두 20% 이상으로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현대차그룹현대글로비스SK그룹SK㈜, 삼성그룹삼성웰스토리가 새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 등 대상 기업이 186사에서 519사로 늘어난다. 재계에서는 "규제를 피하기 위해 총수 지분을 매각할 경우 주가 하락이 불가피한데, 이럴 경우 애꿎은 소액 주주만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수직 계열화에 따른 효율성, 거래 안정성 등 긍정적 효과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② 상법개정안 통과땐 - 이사회 밖에서 감사위원 선출… 헤지펀드로 기밀 샐 우려

경제계는 감사위원 분리선임을 대표적인 문제로 지적했다. 현행 상법은 이사를 선출하고 그중 감사위원을 선임하는데, 개정안은 이사 선출 단계부터 감사위원 중 1명 이상을 별도로 선출하도록 했다. 이렇게 될 경우 지분 2.9%를 가진 헤지펀드들이 연합하면 손쉽게 감사위원을 선출할 수 있다. 감사위원 선임 때 최대 주주는 특수 관계인 등을 합산해 3%를 초과하는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4.18%)과 삼성생명(8.51%), 삼성물산(5.01%) 등이 주요 주주로 21%의 의결권을 행사한다. 그런데 개정안이 통과되면 감사위원 선출 때 이들의 의결권은 3%로 쪼그라들게 되는 것이다. 경제계는 "감사위원은 기업 회계 정보를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에 헤지펀드 등으로 기밀이 샐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모회사의 주식 0.01%를 갖고 있는 주주가 자회사 이사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도록 한 다중 대표 소송 제도도 문제 조항으로 꼽힌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청호컴넷은 135만원으로 모회사 및 자회사 총 13기업에 대한 소(訴) 제기가 가능해진다. 재계에선 소송 리스크가 이전보다 4배 가까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③ 정부는 왜 추진? - 文대통령 '평등경제' 언급 날, 법무부가 이례적으로 직접 나서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은 6·10 민주 항쟁 기념사에서 '불평등 해소'와 '평등 경제'를 강조했고, 같은 날 법무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특히 상법 개정안은 그동안 의원 입법으로 여러 차례 추진했는데, 법무부가 직접 나선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재계에서는 "법무부가 거대 여당을 등에 업고 그동안 여권(與圈)이 '재벌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해온 상법 개정안을 내놓은 것은 대기업 지배 구조 개선에 직접 관여하겠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했다. 법무부는 "소수 주주 보호와 대주주 전횡 방지를 위해 상법 개정안을 내놓았다"고 했지만, 경제계는 소수 주주보다는 2·3대 주주인 국민연금, 해외 헤지펀드들이 대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길이 열렸다고 해석했다.

④ 앞으로 어떻게 되나 - 巨與, 국회 법사위원장까지 장악… "法통과 막을 길 없다"

법무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21일까지 각계 의견을 들어 개정 법안 내용을 최종 확정할 방침이지만 경제계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공정거래법은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거친 뒤 법제처 심사를, 상법은 곧바로 법제처 심사를 받는다. 그 후 차관 회의, 국무회의를 통과한 뒤 대통령 서명을 받아 국회에 법률안을 제출하게 된다. 경제계는 "176석 거대 여당이 국회 법사위원장 자리까지 장악했기 때문에, 두 법 통과를 막을 길은 사실상 없다"고 했다.

⑤ 중기중앙회는 상법만 반대 -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되면 손해볼 것 없어

공정거래법개정안에는 전경련, 경총,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다섯 경제 단체가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전날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중소기업중앙회까지 포함해 6곳이 반대 의견을 발표했는데,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는 빠진 것이다.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이 강화되면 중소기업으로서는 나쁠 것 없다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상의가 따로 의견서를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일부 개정 법 조항을 둘러싸고 다른 경제 단체들과 의견 차가 있었다" "정부안에 강한 반대를 표현하지 않는 차별화 전략을 꾀했다" 등 다양한 분석이 나왔다.

대한상의 측은 "여러 기업 의견을 듣는 등 따로 준비를 많이 했기 때문에 별도로 발표하게 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