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페이로 결제하는 모습

“4년 동안 정부가 밀어붙여도 안 되던 일을 코로나가 몇 개월 만에 해냈다.”

인도 최대 온라인 음식·식료품 배달 업체 겟 심플 테크놀로지의 니타난드 샤르마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코로나 사태로 인도 내 온라인 결제가 급증한 상황을 이같이 설명했다. 지난 2016년 인도 정부가 주도해 도입한 ‘온라인 결제 시스템’은 저조한 이용 실적 탓에 폐지될 위기였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6월에는 역대 최고 거래액을 기록했다.

인도는 전체 인구의 약 20%가 아예 은행 계좌가 없고, 인터넷 보급률이 30%도 안 돼 온라인 결제 보급률이 극히 낮았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뽑는 현금 규모가 중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일 정도였다.

하지만 코로나 봉쇄령으로 발이 묶이면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현금 대신 온라인 결제 시스템을 쓰기 시작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캡제미니 리서치 인스티튜트에 따르면, 올 4월 이후 인도 소비자의 75%가 현금보다 온라인 결제를 더 많이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전 세계가 빠른 속도로 ‘현금 없는 사회’로 바뀌고 있다. 감염 확산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작된 비(非)대면 문화 확산이 현금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각국 정부도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화폐 발행 비용 부담을 덜고, 위조 방지와 거래 투명화 차원에서 온라인 결제 비율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코로나 이후 위생 문제가 소비자들의 최우선 관심사가 되면서 현금이 설 곳이 없어지고 있다"며 "캐시리스(cashless·현금을 사용하지 않음)가 빠르게 일상에 자리 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조만간 손으로 지폐를 주고받는 문화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현금 왕국' 日도 캐시리스 확산

코로나 이후 현금 없는 사회로 빠르게 전환되는 나라는 ‘현금 왕국’으로 불리던 일본이다.

최근 일본의 결제 문화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현금을 쓰지 못하는 ‘코인 주차장’의 등장이다. 일본은 동네 골목마다 100엔짜리 동전을 넣어 이용하는 유료 주차장이 보급돼 있다. 일본 전자 업체 NES는 상반기 도쿄 내 50여 곳에 스마트폰으로만 결제 가능한 코인 주차장을 도입했다. 동전 투입구가 아예 없는 이 주차장은 모바일 사용 빈도가 높은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면서 연내 전국 수백 곳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일본 은행들은 현금 사용 감소에 대비해 영업 지점과 ATM을 대폭 줄이고 있다. 미쓰비시 UFJ 은행과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은 오는 9월부터 직영 지점 외에 설치된 ATM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등 전국에 있는 ATM 700개를 줄이기로 했다.

이런 추세에 맞춰 일본 정부는 지난 14일 일본 내 모바일 결제 QR 코드를 통합한 ‘JPQR’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20개가 넘던 QR코드 결제 방식을 통합해 모바일 결제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현재 10%대인 비(非)현금 결제 비율을 오는 2025년까지 40%대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유럽에서도 현금 사용이 줄어드는 추세다. 이탈리아 노미즈마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코로나 봉쇄 이후 개인의 현금 사용량이 40%가량 감소했다. 청과물 가게나 빵집 등 이탈리아 국민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점포 내 신용카드·온라인 결제 건수는 코로나 이전보다 35배 증가했다. 일부 유럽 국가는 현금 사용 때 상한액을 두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온라인 결제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도 현금 사용이 더욱 줄어드는 추세다. 현대백화점·이마트24 등 대형 유통업체는 1만원 미만 거스름돈을 현금 대신 고객 계좌로 입금하는 서비스를 시행할 계획이다.

◇디지털 화폐 개발 경쟁 치열

온라인에서 현금 역할을 하는 ‘디지털 화폐’ 개발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중국 정부는 최근 관영 디지털 화폐(CBDC) 개발을 마치고 실제 발행을 앞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음식 배달 서비스 업체 메이퇀뎬핑은 인민은행과 손잡고 자사 플랫폼에서 디지털 화폐를 테스트할 계획이다. ‘중국판 우버’로 불리는 디디추싱도 콜택시 서비스에 디지털 화폐를 도입하기로 했다.

디지털 화폐 발행에 미온적이던 일본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15일 “일본 정부가 조만간 디지털 화폐 검토를 공식화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은행도 올해 안에 디지털 화폐 구현 기술 검토해 내년 시범 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그러나 현금 없는 사회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IT업계 관계자는 “현금 사용에 따른 비용을 아까고 코로나 감염 위험을 낮추는 순기능도 있지만, 디지털 결제 수단만을 강요하는 것은 모바일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 등 취약 계층을 소외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