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호텔 조식을 몰래 먹고 있다.’

지난 6월 초 인천 중구 인천공항 인근 호텔. 이 호텔 관계자들 사이 이런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호텔 투숙객이 식사할 것으로 예상되는 양보다, 많은 양의 조식이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이한 현상은 한달 째 이어졌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호텔 대표이사 A씨는 무인으로 운영되던 조식당을 주의깊게 봤다. 그러다 투숙객이 아닌 사람들이 무더기로 몰래 호텔 조식당을 이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름 아닌, 119구급대를 운전하는 소방공무원들이었다.

◇호텔 측, “다른 숙소 묵는 소방관이 호텔 시설 무단 이용”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호텔이 있는 이 빌딩 건물엔 또다른 숙박업소가 위치해 있었다. 호텔은 3~4층을, 소방관들이 묵던 숙소는 5~12층을 쓴다.

A씨는 지난 6월 23일 지방에서 파견 근무를 나온 소방관 12명이 빌딩 4층에 있는 호텔 조식당과 피트니스 센터를 무단으로 이용한 사실을 파악했다. 이 소방관들은 인천공항으로 들어오는 코로나 감염 의심 해외입국자를 분류해서, 수송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호텔 측에 따르면, 소방관들이 묵었던 숙소는 정식 등록 업체가 아닌 불법숙박업소라고 한다. A씨는 당초 코로나 업무로 고생하고 있는 소방관들의 상황을 고려해 식재료 값의 일부인 13만원을 받고, 이들에게 정식으로 인가된 숙소를 이용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안내했다. 이에 소방관들은 "예산이 부족해 현재로서는 어렵다"고 했다고 한다.

A씨는 지난 1일 호텔 대표이사 명의로 해당 소방관들이 소속된 전북소방본부의 소방본부장에게 통지서를 보냈다. '파견된 소방관들의 품위가 손상됐으니, 조치를 취한 뒤 결과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소방 측 “새벽 2시 급하게 예약하느라 불법 숙소인 것 몰라…너무 죄송”

전북소방 측은 “소방공무원들이 한 빌딩에 두 숙소가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탓”이라며 “호텔 측이 요구한 식사재비 13만원을 보상했고, 그저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소방에 따르면, 전북소방본부 소방관 12명은 지난 3월 31일 코로나 파견 업무를 통지 받고 숙소조차 예약하지 못한 채 급하게 인천공항으로 향했다고 한다.

소방관들이 인천공항 인근에 도착한 시간은 다음날 새벽 2시. 전북소방본부 측은 인천소방본부에 숙소 추천을 부탁했고, 추천받은 3곳 중 예약이 가능한 곳은 이 숙소 뿐이었다고 했다. 소방 관계자는 “당시 추천 리스트에 해당 호텔도 있었지만, 투숙 가능한 방이 없었다”며 “무허가 숙박업소인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했다.

이곳에 묵던 소방관들은 두달 뒤인 5월 말쯤 전북소방본부의 또다른 소방관 12명으로 전원 교체됐다. 초기 투숙을 하던 소방관들은 4층이 호텔 라운지라는 것을 알고 사용하지 않았지만, 새로 투숙을 시작한 소방관들은 이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불법 숙박 업소인 것을 알고도 바로 방을 옮기지 못했던 이유로는 “당장 옮길 수 있는 곳은 결국 호텔뿐인데, 호텔이라 방값이 비싸 예산이 부족했다”고 했다. 소방관들은 지난 1일자로 불법이 아닌 또다른 숙박업소를 예약해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전북소방본부 관계자는 “결국 우리 직원들이 구분을 하지 못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라며 “호텔 측에 정중하게 사과했고, 알지 못하고 사용한 것에 대해 너무나 죄송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