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간(위에서부터)과 장 오가노이드. 빨간색(맨 위)과 하얀색(중간)이 코로나 바이러스이다. 맨 아래 사진은 방광암 오가노이드.

'미니 장기(臟器)'로 불리는 오가노이드(organoid)는 동물 실험보다 비용이 저렴하고, 윤리적인 문제에서도 자유로워 생물학 실험에 널리 쓰이고 있다. 최근엔 병에 걸린 오가노이드 연구가 활발하다. 암세포로 오가노이드를 만들어 항암제를 실험하고 사람 줄기세포로 만들어낸 오가노이드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일부러 감염시키는 식이다. 사람의 장기와 유사한 오가노이드가 맞춤형 치료제의 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

◇환자 맞춤형 암 치료 가능

포항공대(포스텍) 융합공학과 정성준 교수와 생명과학과 신근유 교수 연구진은 "3D(입체)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방광암 종양 모델을 제작했다"고 13일 밝혔다. 서울대병원 구자현 교수도 참여한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바이오패브리케이션'에 최근 게재됐다.

암은 종류에 따라 특성이 다르다. 같은 암이라도 환자마다 달리 나타난다. 특히 같은 조직에서도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암세포들이 공존한다. 이 때문에 획일적인 치료는 약물 부작용이나 항암제 내성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먼저 연구진은 각 환자에게서 뽑아낸 암세포를 프린터의 잉크로 삼았다. 잉크를 뿌려 인쇄하듯 암세포를 층층이 쌓아 올려 방광암 오가노이드로 성장시켰다. 이렇게 만든 방광암 오가노이드에서 분열·사멸과 관련된 단백질의 발현량을 분석했다. 그 결과 오가노이드마다 유전자 발현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방광암 치료제 효능도 각각 달리 나타났다.

이와 비슷하게 서울아산병원 장세진 교수도 지난해 폐암 오가노이드 개발에 성공했다. 암 오가노이드는 환자에게 맞는 약이나 치료법을 먼저 시도할 수 있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성준 포스텍 교수는 "획일적인 암 치료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과 낭비를 최소화하고 저비용으로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폐·뇌 등 코로나 연구에도 활용

특히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오가노이드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배양된 세포나 동물 세포로 바이러스를 연구한다. 하지만 세포만으로는 바이러스가 신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폐부터 간, 뇌, 신장, 장(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오가노이드를 만들어 코로나 감염 실험을 하고 있다.

미국 예일대 연구진은 다 자란 세포를 원시세포 상태로 만든 유도만능 줄기세포를 이용해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다. 코로나 환자들이 호흡기 증상뿐 아니라 미각·후각을 잃는 등 신경 이상 증상이 나타나는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다. 뇌 오가노이드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노출한 결과, 바이러스가 뉴런(신경세포)에 감염되고 그 주변에 있던 다른 세포들이 죽은 것을 확인했다. 또한 연구진은 특정 뉴런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하는 수용체(ACE2)를 발견했다.

스페인 카탈루냐 생명공학 연구소는 오가노이드를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폐에서 다른 장기로 퍼지는 과정을 밝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혈관 내벽 세포에 감염되면서 혈액을 통해 온몸을 돌다가 신장 등 다른 장기에 옮아간다는 것이다. 중국 푸단대 연구진은 간 오가노이드 연구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담관 세포에 감염돼 세포를 죽이는 것을 발견했다. 소장과 대장의 내벽을 구성하는 세포 속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복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오가노이드 연구는 코로나에 대응할 새로운 치료법 개발에 기여했다. 여러 연구진이 오가노이드를 이용해 기존 약물들의 코로나 치료 효과를 테스트하는 중이며, 그중 일부는 성공을 거뒀다. 예일대 연구진은 ACE2 차단 항체를 투여하면 바이러스의 뇌 감염을 차단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다만 네덜란드 에라스무스대학병원의 바르트 하흐만스는 "개별 오가노이드로는 각 기관 간 상호작용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동물 모델과 임상 연구를 통해 검증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