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의 간판 기능이자 첨단 운전 보조 시스템을 일컫는 '오토파일럿'이 허위 광고라는 독일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14일(현지 시각) 로이터·AFP 등에 따르면, 이날 독일 뮌헨지방법원은 테슬라가 '오토파일럿'으로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한 것처럼 홍보하지만 이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으며 소비자들이 오인할 소지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앞서 독일 시민단체인 '불공정경쟁대응센터'가 "독일에선 아직 자율주행 관련 법이 제정되지도 않았는데 테슬라 광고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소송을 제기하면서 이뤄졌다. 독일 법원의 판결은 국내 시장에도 의미가 있다. 테슬라 한국지사인 테슬라코리아도 오토파일럿에 대해 '완전 자율주행 기능'이라고 홍보하고 있어 '허위 광고'라는 비판이 나온다.

"오토파일럿, 운전자 보조 기능에 불과"

차량을 주문할 수 있는 테슬라코리아 홈페이지에선 지금도 오토파일럿에 대해 '완전 자율주행 기능'이라며 '내비게이트 온 오토파일럿: 차로와 저속 주행 차량 추월 등을 포함한 고속도로 진입로 및 진출 차로에서 자동 주행합니다' '자동 차로 변경: 고속도로 주행 시 자동으로 차로를 변경합니다' 등 적용된 자율주행 기능들을 열거해 놨다. 실제 운전자 개입 없이 자동으로 차로를 변경할 수 있다면 미국자동차공학회(SAE)가 분류한 자율주행 단계 중 '레벨 3 부분 자율주행'에 해당한다. 국토교통부는 국내 안전기준상 레벨 3 이상을 자율주행차로, 조향과 가속·감속만 지원하는 레벨 1~2는 자율주행이 아닌 운전자 보조 기능 탑재 차량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테슬라 차량에 적용된 자동 차로 변경 기능은 운전자가 먼저 방향지시등을 넣어야 하는 등 수동 조작을 해야 하기 때문에 레벨 2로 분류된다. 게다가 이 기능은 현대자동차의 고급 승용차 브랜드 제네시스에서 올해 출시한 신차 GV80과 G80에도 도입된 기능이다. 하지만 현대차는 이 기능에 대해 자동 차로 변경 기능이라 소개하지 않고 '고속도로 주행보조(HDA) II'라고 표기한다.

자율주행 기술을 담당하는 국토교통부 첨단자동차기술과 관계자는 "오토파일럿은 운전자 보조 기능에 불과한 수준"이라며 "국내 시판 차량 중 자율주행 3단계 차량은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허위 광고인 셈이다. 이에 대해 테슬라코리아 관계자는 "홈페이지 소개 문구는 전 세계 테슬라 홈페이지 공통 사항"이라며 "본사 차원의 지시가 내려오지 않는 이상 수정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국내 안전기준도 적용받지 않아

테슬라가 국내 안전기준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배경에는 2007년 타결된 한·미 FTA가 있다. 한·미 FTA에 따라 미국산 자동차는 한국 안전기준에 맞지 않더라도 미국 안전기준만 충족하면 수입을 허용하도록 협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체당 연간 6500대 미만까지만 적용되던 안전기준 면제 조항은 개정을 거치면서 2018년 개정안에서 5만대까지 늘어난 상황이다. 즉, 올해 상반기까지 국내에 판매된 1만대가량 테슬라 전기차는 국내 기관의 안전기준 점검을 받아본 적 없다는 의미다. 국내 시판된 차들의 경우, 원래 국토부와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의 적합 조사를 받아야 한다.

미국 안전기준만 통과한 테슬라 차들이 국내에 많아지는 것에 대해 우려도 나온다. 이미 미국에선 최근 몇 년간 오토파일럿 기능에 대한 맹신으로 인한 사망 사고가 수차례 발생했다. 테슬라 오토파일럿 등과 관련한 사망 사고와 사망자 수를 집계·정리하는 '테슬라 사망'(www.tesladeaths.com)이라는 홈페이지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다. 이 사이트에 따르면, 오토파일럿 기능 관련 사망 사고는 14건에 이른다.

테슬라 오토파일럿 기능이 자율주행 기능이라는 오해와 맹신은 소비자들의 도덕적 해이까지 일으키고 있다. 원래 오토파일럿 기능은 운전대에서 손을 떼면 경고음과 함께 기능이 풀리게끔 설계됐지만, 일부 소비자가 '오토파일럿 헬퍼'라는 불법 개조 장치를 이용해 운전대에서 손을 떼도 오토파일럿 기능이 계속 작동하게 개조하고 있다. 일종의 무게추를 운전대 뒤에 부착해 시스템이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장치로 인터넷에서 약 5만원이면 구매할 수 있다.

이런 허위·과장 광고를 적발하고 시정조치해야 하는 공정거래위원회는 아직 오토파일럿 기능 광고에 대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상황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자율주행 용어만 가지고 허위·과장 광고라 단정 짓긴 어렵다"며 "표시광고법에 따른 여러 요건을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차후 조사 진행 여부에 대해선 "개별 조사 건에 대한 진행 여부는 밝히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