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의 성폭력 사건이 잇따르자 당내에서도 "우리 당이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위기의 목소리가 나온다. 인터넷 게시판엔 '더듬어만지당' '더불어만진당' 같은 표현이 쏟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을 만큼 민주당은 그동안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을 자처해왔지만, 최근 정치권에서 불거진 성폭력 사건 대부분에서 민주당 인사들이 '가해자'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해찬 대표가 15일 "특단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당내에서도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 진상 규명부터 적극 나서라"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지 하루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성폭력 사건에 연루돼 사퇴한 3번째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2018년 3월 수행 비서가 수년간의 성폭행 피해를 폭로하자 사퇴했고, 지난 4월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시청 직원을 성추행했다고 밝힌 뒤 사퇴해 수사를 받고 있다. 앞선 사건의 충격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사건이 꼬리를 물었다.

민주당은 4·15 총선 과정에서도 영입 인사들의 성추문에 시달렸다. 올해 1월 당 '영입인재 2호'로 등장한 원종건씨는 봉사활동과 선행을 펼친 '바른 청년'으로 관심을 모았지만, 원씨의 전 여자친구가 인터넷에 "원씨가 지속적으로 성노리개 취급해왔고 여혐(여성 혐오)과 가스라이팅(정서적 학대)으로 괴롭혔다"고 폭로한 뒤 출마를 포기했다. '조국 지키기'에 앞장섰던 김남국 의원은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이 포함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논란이 됐다.

당 밖에서도 친여 인사들의 성추문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이들의 입지는 굳건하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2017년 청와대 행정관으로 처음 발탁됐을 때 과거 저서에 쓴 "파인 상의를 입고 허리를 숙일 때 가슴을 가리는 여자는 그러지 않는 편이 좋다" "대중교통 막차 시간 맞추는 여자는 구질구질해 보인다" 등의 내용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탁 비서관은 과거 민주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했던 김용민씨가 "살인범을 풀어 콘돌리자 라이스(미국 전 국무장관)를 성폭행해 죽여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해 "교통신호 어긴 것쯤"이라고 옹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탁 비서관은 잇따라 중용됐고 김용민씨는 KBS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았다. 성추행 의혹으로 서울시장 출마를 포기했던 정봉주 전 의원, 미투 사건으로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했다가 2개월 만에 복귀했던 민병두 전 의원도 여전히 여권에서 정치적 재기를 노리고 있다.

민주당은 최근에도 공수처장 추천위원에 'n번방 사건' 가해자 변호 이력이 있는 장성근 변호사를 추천했다가 논란이 일자 철회했다. 민주당에선 "장 변호사가 n번방 사건 변호를 맡은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당 안팎에서는 "민주당이 성폭력 사건에 둔감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같은 당 인사의 성폭력 사건에는 진상 규명보다 일단 감싸고 드는 게 문제"라며 "과거 운동권 시절의 인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동지 의식'이 잘못 발현된 결과"라고 했다. 이런 의식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 윤준병 의원은 페이스북에 "박 전 시장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등을 방지하기 위해 죽음으로 답한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고 썼다가 비판이 쏟아지자 삭제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은 2014년 한나라당 출신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골프장 캐디 성추행 사건 때 "성추행을 범한 후에도 피해자 탓을 하는 '2차 가해'를 범하는 '개'들이 참 많다"고 했지만 이번 박 전 시장 사건에서는 침묵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옛날 성누리당 지지자들이 갑자기 페미니스트가 되고, 옛날 민주당은 그새 더듬어만지당으로 변신해 그 짓을 변호하고"라며 "앞으로 정의로운 척하는 거나 삼가라, 역겨우니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