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전세금이 모자라 자살하는 서민이 속출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30년 전인 1990년 4월,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은 "전세 융자금 추가 증액 등 조속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장기적으론 공급 물량을 확대해야 한다"며 이렇게 비판했다. 당시 전국 전셋값은 '88올림픽' 전후로 크게 올라 1987년부터 1990년까지 4년간 86% 폭등했다. 집값(68%) 자체도 많이 올랐지만 전셋값은 그보다 20%포인트 가까이 더 오른 것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당시 4년간 서울(82%)은 물론 경기도(108%), 6대 광역시(93%) 등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전셋값이 급등했다. 당시 전셋값 급등에는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 호황'으로 넘치던 시중 유동성, 절대적인 공급 물량 부족 등이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노태우 정부가 전셋값을 잡겠다며 1989년 주택임대차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는 개정안을 내놓자, 집주인들이 2년치 임대료를 한꺼번에 올리는 부작용까지 겹쳤다.

당장의 주거가 불안해지자 곳곳에서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해 일가족이 자살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만약 국회의원과 정부의 고위 관리들이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면 오르는 전셋값을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었을까"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치솟던 전셋값이 다시 안정된 것은 1990년 말이 돼서였다. 정부가 분당·일산 신도시 등 주택 200만 가구 공급 계획을 추진하자 집값이 하락했고, 전셋값 상승률도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이후 1998년 외환 위기 직후까지 안정세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