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 않은 미래, 대도시 서울의 로봇 전용 아파트. 이곳에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헬퍼봇'들이 산다. 이젠 부품도 만들지 않는 낡은 로봇들. 구형이 되어 버려진 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홀로 시간을 보낸다. 누군가는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며, 누군가는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매 순간을 나답게 보내겠다고 다짐하며 하루를 살아나간다.

올리버(왼쪽)와 클레어는 "우리가 잡은 손이 자꾸만 낡아가고 시간과 함께 저물어간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 한다"고 노래한다. "우리 괜찮을까요?" "어쩌면요."

두 로봇의 우연한 사랑 이야기가 코로나 사태로 울적했던 대학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2016년 초연 당시 97회 중 70회 매진을 기록하며 흥행했던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다.

2018년 재연 이후 2년 만에 관객을 만난다. 지난달 30일 서울 동숭동 YES24스테이지에서 개막한 이후 매진되지 않은 회차가 손에 꼽힌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출연했던 전미도·정문성 콤비가 흥행의 주역. 로봇 클레어 역을 맡은 전미도의 청아하고 단단한 보컬과 올리버 역 정문성의 섬세한 감정 표현이 돋보인다.

"그땐 온 세상이 고요했었던 것 같아. 내 심장 소리만 들렸던 것 같아." 난생처음 마주하는 '사랑'이란 감정에 두 로봇은 놀라고 감격한다. 그러나 사랑은 끝이 분명한 길을 잠시만 함께 걷는 것. 점점 낡아가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사랑의 아픔을 알게 된 클레어와 올리버는 결국 기억을 지우기로 결정한다.

극은 두 로봇의 이야기를 빌려 늙어가고, 후회하고, 그럼에도 멈출 수 없는 사랑을 그린다. 올리버는 기억을 지운 척 클레어에게 방문을 열어준다. 그때 클레어는 기억을 지웠을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답이 있다. 그 순간 관객들이 눈물을 쏟는다.

초연·재연에 없던 화려한 영상 효과를 더해 대중성을 끌어올렸다. 두 로봇의 제주도 여행길, 그곳에서 함께 노을을 보고 반딧불이를 만나는 장면들이 영상으로 아름답게 표현됐다.

일반적으로 무대 아래 자리하는 오케스트라가 2층으로 나뉜 무대 공간에 배치됐다. 배우들을 내려다보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주소연 음악감독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배우 전성우와 양희준이 올리버를, 강혜인과 한재아가 클레어를 나눠 맡는다. 9월 1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