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자신을 상대로 성추행 고소가 접수된 바로 다음 날 유서를 남기고 집을 나갔고 숨진 채 발견됐다. 박 전 시장 휴대전화는 그가 누구에게 성추행 피고소 사실을 들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지만, 경찰은 장례식이 끝나고 하루가 지난 14일에도 휴대전화 분석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 경찰은 “삼우제(三虞祭)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텔레그램 비밀대화방 초대화면을 공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특감반원이 유서를 남기고 숨졌을 당시 경찰은, 사망 2일차에 검찰이 휴대전화를 가져가자 “휴대전화는 변사사건의 핵심 증거”라며 강하게 저항했었다.

14일 검찰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성북경찰서는 서울북부지검으로부터 박 전 시장 휴대전화를 포렌식하라는 지휘를 받고도 이날까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박 전 시장은 사망 당시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다. 극단적 선택이 분명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선택에 이르게 된 이유와 경위는 파악해야 한다는 게 수사 전문가들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경찰은 느긋하다. 경찰 관계자는 “휴대전화 분석을 위해 유족들과 이야기도 나누는 등 절차를 거칠 계획인데, 삼우제를 지낸다 해서 마치면 상의를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경찰 측 ‘유족과 상의’라고 했지만, 법적으로 변사 사건 관련 디지털 포렌식은 유족에게 ‘일방 통보’만 하고도 착수할 수 있다. 이 점을 묻자 이 관계자는 “아직 장례 절차가 진행 중인데, 그걸(포렌식 고지) 보내고 뭐고… 급할 것 없으니까”고 했다. 또 그는 “(휴대전화에) 암호가 걸려있어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개월 걸릴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내부 기자회견장에서 김재련(오른쪽 두번째)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핸드폰이 유가족 손에 있는 경우라면 오히려 압수수색 영장을 쳐서 가져와도 모자를 정도인데, 의도적으로 수사를 늦추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수사 전문가는 “박 전 시장에게 성추행 고소장이 접수된 사실을 유출한 범인이 휴대전화 분석을 통해 드러나는 상황이 경찰은 두려운 것”이라고 했다.

경찰의 사망자의 휴대전화에 대한 태도가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특감반원이 유서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을 때와 다르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12월초 검찰은 변사 사건 이틀만에 서초경찰서를 압수수색해 경찰이 가지고 있던 특감반원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그러자 경찰은 휴대전화를 되찾기 위해 2번이나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숨진지 3~4일째에 벌어진 일들이다.

당시 경찰은 “검찰이 변사사건에 대한 사인 규명도 전에 핵심 증거를 가져갔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박 시장의 핸드폰도 변사 원인을 밝힐 만한 핵심 증거 중 하나인데, 특감반원 때와 경찰이 다른 대처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