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자신을 상대로 성추행 고소가 접수된 바로 다음 날 유서를 남기고 집을 나갔고 숨진 채 발견됐다. 박 전 시장 휴대전화는 그가 누구에게 성추행 피고소 사실을 들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지만, 경찰은 장례식이 끝나고 하루가 지난 14일에도 휴대전화 분석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자 경찰은 “삼우제(三虞祭)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지난해 12월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특감반원이 유서를 남기고 숨졌을 당시 경찰은, 사망 2일차에 검찰이 휴대전화를 가져가자 “휴대전화는 변사사건의 핵심 증거”라며 강하게 저항했었다.
14일 검찰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성북경찰서는 서울북부지검으로부터 박 전 시장 휴대전화를 포렌식하라는 지휘를 받고도 이날까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박 전 시장은 사망 당시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다. 극단적 선택이 분명한 사건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선택에 이르게 된 이유와 경위는 파악해야 한다는 게 수사 전문가들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경찰은 느긋하다. 경찰 관계자는 “휴대전화 분석을 위해 유족들과 이야기도 나누는 등 절차를 거칠 계획인데, 삼우제를 지낸다 해서 마치면 상의를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경찰 측 ‘유족과 상의’라고 했지만, 법적으로 변사 사건 관련 디지털 포렌식은 유족에게 ‘일방 통보’만 하고도 착수할 수 있다. 이 점을 묻자 이 관계자는 “아직 장례 절차가 진행 중인데, 그걸(포렌식 고지) 보내고 뭐고… 급할 것 없으니까”고 했다. 또 그는 “(휴대전화에) 암호가 걸려있어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개월 걸릴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핸드폰이 유가족 손에 있는 경우라면 오히려 압수수색 영장을 쳐서 가져와도 모자를 정도인데, 의도적으로 수사를 늦추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수사 전문가는 “박 전 시장에게 성추행 고소장이 접수된 사실을 유출한 범인이 휴대전화 분석을 통해 드러나는 상황이 경찰은 두려운 것”이라고 했다.
경찰의 사망자의 휴대전화에 대한 태도가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특감반원이 유서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을 때와 다르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12월초 검찰은 변사 사건 이틀만에 서초경찰서를 압수수색해 경찰이 가지고 있던 특감반원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그러자 경찰은 휴대전화를 되찾기 위해 2번이나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숨진지 3~4일째에 벌어진 일들이다.
당시 경찰은 “검찰이 변사사건에 대한 사인 규명도 전에 핵심 증거를 가져갔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박 시장의 핸드폰도 변사 원인을 밝힐 만한 핵심 증거 중 하나인데, 특감반원 때와 경찰이 다른 대처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