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이 8720원으로 결정됐다. 올해 최저임금(8590원)보다 1.5% 높다. 최저임금 제도가 시행된 1988년 이후 33년만에 역대 최저의 인상률이다.

14일 새벽 2시쯤 최저임금위원회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9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급 8720원으로 결정했다. 최저임금위 공익위원들은 이날 새벽 1시쯤 내년도 최저임금으로 8720원의 단일안을 제시했고, 이후 이를 표결에 부쳤다. 한국노총의 근로자 위원 5명은 이에 반발해 집단 퇴장했다. 근로자 위원은 원래 모두 9명이지만, 민주노총 추천 위원 4명도 "삭감안을 주장하는 사용자 측과는 대화할 필요가 없다"며 회의에 참여하지 않은 상태였다. 소상공인 측 사용자 위원 2명도 퇴장했다.

남은 공익위원 9명, 사용자 위원 7명이 이를 수용할지 여부를 놓고 투표를 했고, 9명이 찬성, 7명이 반대했다. 기권은 없었다. 공익위원 일부가 1.5% 인상안에 손을 들어준 것으로 추정된다. 전날 오후 3시 회의를 시작한지 약 11시간 만이다. 회의는 13일 8차로 시작됐지만, 14일 자정을 넘기며 9차로 회차가 바뀌었다.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8차 전원회의에서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노·사는 최저임금 결정을 두고 회의 내내 신경전을 벌였다. 지난 9일 열린 6차 회의에서 노동계는 9430원(9.8% 인상)을, 경영계는 8500원(1.0% 삭감)을 1차 수정안으로 각각 제시한 상태였다. 13일 회의서도 양측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자 공익위원들은 '시급 8620~9110원' 범위 안에서 수정안을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인상률로는 0.3~6.1%에 해당하는 액수다.

하지만 양측은 이 직후 각각 8620원과 9110원을 수정안으로 내놨다.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범위에서 각각 가장 낮은 금액과 높은 금액을 써낸 것이다. 경영계가 이후 8620원을 다시 8635원(0.52% 인상)으로 다시 수정안을 내 놨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후 한국노총이 공익위원들에게 단일안을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공익위원들의 단일안에 대해선 코로나19로 인한 전례 없는 경제 위기 상황이 반영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24일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1%로 낮췄다. 지난 4월 전망(-1.2%)보다 0.9%포인트 더 낮다.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지난 4월 전망(-3%)보다 1.9%포인트 더 낮은 -4.9%로 수정했다.

하지만 양대노총은 강하게 반발했다. 민노총은 13일 전원회의에 참석하는 대신 회의가 열리는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천막을 치고 "최저임금 삭감안을 제시한 사용자 단체를 규탄한다"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한국노총도 공익위원들이 14일 새벽 단일안을 제시한 직후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익위원 스스로 대한민국 최저임금의 사망선고를 내렸다"며 "공익위원들 스스로 편파성을 만천하에 보여줬는데, 더 이상 회의는 아무 의미가 없어 퇴장을 결정했다"고 했다. 이로써 최저임금위에서 노사 어느 한쪽이 표결에 불참한 횟수는 18번으로 늘었다. 경영계가 9번, 노동계가 9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