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을 즐기는 기업인은 꽤 많지만, 하루 일과의 최우선순위를 바둑에 맞춰 사는 기업인은 거의 없다. 대회를 손수 만들고 직접 보살피며 키워온 기업인은 아마도 지지옥션 강명주(77) 회장이 유일할 것이다. '신사 대 숙녀 연승대항전' 14번째 개막(8월 4일)을 앞둔 그는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처음엔 5년쯤 하고 손을 뗄 생각이었는데 흠뻑 정이 들어버려서… 이젠 이 대회 없으면 못 살 것 같아요." 남성 시니어와 여성들이 자존심 걸고 겨루는 단체전이란 대회 콘셉트가 국제 타이틀전 뺨치는 히트를 쳤다. 젊은 남성들이 독점한 바둑계에서 두 마이너 그룹의 사기를 북돋워 온 공로가 큰 대회다.

강명주 회장이 직접 그린 역대 지지옥션배 기념 만화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60년 가까운 경력의 프로 만화가이기도 하다.

2007년 첫 대회부터 요란했다. 박지은이 6연승하고 올라온 조훈현과의 최종전서 반집 역전승, 여성팀 우승으로 끝나면서 시청률에 불이 붙었다. 2011년 5회 때는 여성팀 최정의 8연승을 시니어팀 조훈현이 8연승으로 맞받아치는 드라마 속에 시니어팀이 승리했다. 2010년부터는 같은 방식의 아마추어 대항전까지 창설, 매년 함께 열린다.

대회가 시작되면 ㈜지지옥션 직원들은 비상 체제에 돌입한다. 모든 회사 일정과 강 회장의 동선이 지지옥션배 일정에 따라 운영된다. 회사 중요 업무와 대회 시간이 겹쳐 차량에 바둑 TV 앱을 긴급 설치, 뒷자리에서 모니터로 관전하며 이동한 경우는 이제 흔하다. 지지옥션 청파동 사옥은 프로기사들의 사랑방이 된 지 오래다.

한국기원을 통해 통산 후원액 규모를 알아본 결과 출범 첫해(1억5000만원)부터 올해(2억5000만원)까지 14년간 대략 33억원을 썼다. 지지옥션은 연 매출 100억 남짓에 직원 100명 정도가 일하는 경·공매 데이터 업체다. 재벌도, 소비재 기업도 아닌 중견급 회사가 감당하기엔 과도한 부담이 아니었을까.

"우리 회사는 정보 생산 업체로 신용이 생명입니다. 바둑대회 덕분에 회사 인지도가 높아지고 신뢰가 쌓이면서 이만큼이라도 컸어요. 집 서너 채 값으로 많은 사람이 회사 이름을 기억하게 됐으니 바둑에 엄청나게 신세 진 셈이죠." 그는 "간접 광고가 직접 광고보다 더 효과적이고, 특히 바둑대회 후원 홍보 효과가 큰 것 같다"는 견해도 덧붙였다.

지지옥션배는 양 팀 간 팽팽한 균형이 흥행 성패를 결정한다. 작년까지 시니어가 6번(2·3·5·7·10·13회), 여성팀은 7번(1·4·6·8·9·11·12회) 우승했다. 출범 당시엔 시니어 출전 자격이 45세였으나 여성 바둑이 급성장하면서 10회(2016년) 때부터 시니어 연령 제한을 낮췄다. 이 부분도 강 회장이 매년 발 벗고 나서 조절한다.

올해 시니어팀은 시드자 4명 외에 40대 4명과 50~60대 4명으로 구성됐다. 강 회장은 "40대 남자 기사들 실력이 막강하다"며 시니어팀의 2년 연속 우승을 점쳤다. 그는 조치훈과 루이나이웨이, 위즈잉 등 세계적 스타들을 선수로 초청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강 회장의 꿈은 대회 기금을 만들어 지지옥션배를 영원히 개최하는 것이다. 대만 재벌 고(故) 잉창치(應昌期)씨가 남긴 잉창치배가 모델이다. "대략 100억원 정도 규모면 영구 개최가 가능할 것 같은데, 광고비로 처리하기 때문에 그리 큰 부담도 아니에요. 더 늦기 전에 회사 직원들과 논의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