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이 '바람의 아들'이라면, 이종범 아들 이정후(22·키움)는 힘이 더 세진 '태풍의 아들'이다.

이정후의 야구는 매년 업그레이드를 거듭한다. 프로에 데뷔한 2017년 고교 신인 최다 안타(179개) 기록을 세우며 신인왕을 거머쥐었고, 2018년 타율 3위(0.355), 2019년 타율 4위(0.336) 등에 오르며 한국을 대표하는 교타자로 자리매김했다. 이정후는 올해 또 진화했다. 기존의 정교한 타격 능력에 장타력까지 덧대 5툴(장타력, 타격 정확도, 주루, 수비, 송구 능력) 선수로 변신했다.

이정후는 재능 있는 천재가 노력을 더하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한국 야구의 미래다. 그는 약점으로 꼽혔던 장타율 개선을 위해 구단 전력 분석실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해외 타자들의 영상을 직접 찾아보고 연구했고,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하며 파워를 길렀다. 타격왕과 200안타 달성을 꿈꾸는 그는 "훈련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정교함에 힘까지 더한 '야구 천재'

'장타 늘리려다 타율이 깎인다'는 야구계 통념이 이정후에겐 안 통했다. 비시즌 기간 매일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근육량을 키워 체중을 85㎏까지 늘렸고, 그 힘을 자신의 타격 메커니즘에 그대로 갖다 붙였다. 올 시즌 장타율(0.615·10일 기준)이 지난해(0.456)보다 2할 이상 올랐다. 아버지의 한 시즌 최고 장타율 0.581(1994년)보다 높다. 그러면서 헛스윙률은 불과 3%대이다. 리그 평균 헛스윙률이 10%대인 것을 감안하면 월등한 콘택트 능력이다. 지난해까지 6개에 머물렀던 개인 한 시즌 최다 홈런이 시즌이 아직 반도 안 지났는데 벌써 9개다.

타구 속도도 빨라졌다.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올 시즌 이정후의 인플레이 타구 속도(번트 제외)는 평균 시속 138.7㎞다. 데뷔 첫해인 2017년(129.2㎞/h)은 물론이고 지난해와 비교해서도 5㎞/h 이상 빨라졌다. 강병식 키움 타격코치는 "본인이 '왜' 타구 속도를 늘려야 하고 '어떻게' 실행할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당겨 치는 유형의 타자이다 보니 타구 속도가 빨라야 유리하다. 비시즌에 히팅 포인트를 앞에 두고 치는 맹훈련을 했더니 놀라운 결과를 만들었다"고 했다.

타구 방향도 편식이 없다. 타구가 세 방향(좌·중·우) 중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 선수를 흔히 '스프레이' 또는 '부챗살' 타자로 부른다. 타구가 골고루 뻗으면 수비 시프트를 걸기 애매해져 상대하기 까다롭다. 이정후는 세 방향 모두에서 타구 비율을 30% 이상 유지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오른쪽 타구 비율이 커진다. 좌중간 타구가 38.5%(2017)에서 30.5%(2020)로 줄고, 대신 우중간 타구가 35.9%(2017)에서 45.8%(2020)로 늘었다. 좌타자인 이정후가 몸쪽 공을 전보다 더 잘 당겨쳐 타구가 우익수 방향으로 많이 뻗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이터다. 당겨치면 힘 전달이 쉬워 타구의 비거리도 당연히 늘어난다.

◇성격은 초심 그대로 "야구 욕심 끝없다"

이정후는 심장마저 크다. 스포츠 통계업체 데이터에볼루션에 따르면 특별히 약한 볼카운트가 없고,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도 3할2푼대 타율을 유지한다. 시야도 넓다. 데뷔 초엔 9등분한 스트라이크 존에서 몸쪽 코스 타율이 1~2할대 초반에 머물렀지만, 올해는 9개 존 모두에서 3할 이상을 때려낸다. 넓은 콘택트 범위에 투수와의 담대한 수 싸움 능력까지 갖췄다는 얘기를 듣는다. 지난달엔 프로 데뷔 첫 끝내기 안타를 신고했다.

그럼에도 이정후의 야구 욕심은 끝이 없다. 이정후는 "올 시즌 병살타가 늘었다. 타구 속도가 늘면 병살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답답하다"면서 "주자가 나가 있으면 '제발 병살 말고 외야로 공 띄우자'고 집중하는데 그러다 보니 홈런도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시속 146㎞ 이상 속구 대처 능력도 스스로 불만이다. 올 시즌 히팅 포인트를 앞으로 당긴 여파인지 시속 150㎞ 가 넘는 빠른 공에 유독 약해졌다. 커터도 이정후가 가장 취약한 구종이다. 이정후는 전력분석실을 수시로 드나들며 개선점을 끊임없이 찾고 있다.

성격은 성적보다 더 놀랍다. 키움 관계자는 "기량은 날로 발전하는데 겸손한 태도는 데뷔 때와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이정후는 매 시즌 쓸어 담는 상금과 연봉 일부를 유소년 야구나 자선 단체에 기부한다. '이종범의 아들'로 남들보다 편하게 야구했기 때문에, 받은 사랑만큼 널리 나눠야 한다고 믿는 속 깊은 청년이다. 이정후는 올해 목표로 "타격왕과 200안타"를 외쳤다. 천부적 재능에 노력을 더하는 훤칠한 야구 청년이 바람을 뛰어넘어 태풍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