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용사들은 한 번도 한국을 도운 걸 후회한 적이 없다고 하세요.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한 것을 자기 일처럼 좋아하는 분들께 은혜를 갚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신광철(66) 에티오피아 참전용사후원회 사무국장은 1996년부터 6·25전쟁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의 생활을 돕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1951년 당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결정에 따라 황실근위대 소속 군인 6037명을 6·25전쟁에 파병했다. 이들은 1951년 5월 한국에 들어와 253회의 전투를 치러 모두 승리했다. 122명이 전사했고 536명이 다쳤지만 포로는 단 1명도 없었다. 1953년에는 '보화원'이라는 이름의 보육원을 세워 전쟁고아를 보살피기도 했다.

신광철 에티오피아 한국전참전용사후원회 사무국장이 에티오피아산 커피 원두를 섞고 있다. 신 사무국장은 지난 2000년부터 커피 판매 수익금 중 일부로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와 가족의 생활을 돕고 있다.

그러나 본국으로 돌아간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은 1974년 에티오피아가 공산화되면서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주의 동맹국인 북한과 싸웠다는 이유였다. 황실근위대 출신임이 드러나면 정권의 탄압이 가해지기 때문에 참전용사들은 참전 사실마저 숨겨가며 생활고를 겪었다.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신씨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후원 사업을 시작했다. "참전용사들이 정치적 탄압과 생활고를 겪으며 어렵게 살아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어요. 중학교 2학년 때인 1968년 춘천 에티오피아 참전 기념탑 제막식에서 셀라시에 황제를 직접 본 뒤로 에티오피아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1996년 5월 신씨는 회원으로 활동해오던 로타리클럽 등과 함께 '에티오피아 참전용사후원회'를 결성했다. 배우 손숙(76)씨가 회장을 맡았다. 2000년에는 에티오피아 커피를 수입해 가공하는 회사 '아비시니카'를 세우고 수익으로 참전용사들의 생활비를 후원해왔다.

신씨는 25년간 에티오피아를 102번 다녀왔다. 그사이 참전용사들이 모여 살던 코리아빌리지에는 자전거 공장과 가축 농장이 마련됐다. 중고 컴퓨터를 학생들 교육용으로 기부하는 한편, 참전용사 주택 43채를 리모델링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강원 춘천시에서 출발해 대구·부산·제주 등을 거쳐 경기 파주시까지 걷는 모금 행사도 했다.

그는 참전용사들과의 우정을 후원 사업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고령의 참전용사들이 저를 보시면 해맑은 소년처럼 전쟁 얘기를 해주세요. 어떻게 253번을 다 이기셨냐고 여쭤보면 '이길 때까지 싸웠다'고 답해주시기도 하고, 보화보육원 얘기를 하며 그때 만난 아이들을 그리워하시기도 하죠."

에티오피아 참전용사후원회는 올해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1951년 4월 25일의 출전 기념식처럼 참전용사 138명이 군복을 입고 행진하는 행사를 기획했지만 코로나로 취소됐다. 신씨는 "5월에만 두 분이 돌아가셔 지금 136분만 살아계신다"며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그때는 몇 분이나 살아계실지 걱정된다"고 했다. 출전기념식 대신 후원회는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한 참전용사들을 위해 침대를 선물하기로 했다. 주택 리모델링 사업과 의료비·교육비 지원도 이어갈 계획이다.

신씨는 "정전 70년을 맞는 2023년쯤 활동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는데 아직 못 이룬 것들이 많다"며 "4월에 후원회가 참전용사들에게 마스크 1000장을 전달한 것처럼 양국 후손들의 우정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