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 프라이팬인 웍을 들고 할리 데이비슨에 걸터앉은 신계숙 배화여대 교수. 신 교수는 “내 인생은 오토바이를 타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했다.

지난달 EBS '세계테마기행'에 출연한 신계숙(56) 배화여대 전통조리학과 교수는 깜짝 스타가 됐다. 중년 여성이 출연하면 시청률이 높지 않다는 방송사 우려 혹은 편견을 비웃고 올해 최고이자 역대 최고(4.63%)에 육박하는 4.26%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꽃중년 길을 나서다'(5부작). 중국 남부 변방과 대만에서 한 달 동안 촬영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오랜 집콕 생활에 지친 이들의 명약'이라는 극찬과 함께 재방송 요청은 물론 미공개 영상을 풀어달라는 주문이 쇄도했고, 한 달 사이 세 번이나 재방했다.

중국인보다 더 현란하게 웍(중국식 프라이팬)을 돌리는 요리 솜씨와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 우연히 만난 현지인과 의자매·의남매를 맺는 놀라운 친화력은 성공한 외식 사업가이자 방송인 백종원씨를 연상케 한다. 여기에 오토바이를 몰며 신나게 노래 부르고, 기타를 연주하고, 중국인 뺨치는 중국어 솜씨까지 장착했으니, '여자 백종원'이 아니라 '백종원 업그레이드 버전'이랄까.

신 교수를 서울 후암동에 있는 그의 요리연구실에서 만났다. 화자오와 마른 고추를 웍에 볶는 맵싸한 냄새가 눈과 코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시장에 가면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즉석 팬 미팅이 열린다면서요.

"마스크 착용하고 방송국 갔는데 '테마기행 나온 분 아니세요'라며 알아봐요. 내레이션으로 들은 제 목소리를 기억한 거죠. 신기했어요."

―시청자 게시판에 '방송 보면서 힐링받았다' '희망을 얻었다' 등 칭찬과 감사 일색입니다.

"자꾸 뭘 받았다고들 그래요. 난 준 게 없는 데 뭘 받았다는 거여?(웃음) 감사하죠."

―방송에서 쏟아낸 명언도 화제입니다. 밀림에서 로프 잡고 가다가 "아저씨가 손을 잡아줘서 거기 집중하다 줄을 놓쳤네요. 남자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줄 하나 믿고 가는 게 낫겠어요!" 같은 거요.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몰랐어. 여성 시청자들이 많이 공감했던가 봐요."

―어쩜 그렇게 쉽게 사람들과 친해집니까.

"저는 특별히 친화력이 좋다는 생각은 못했고, 그냥 어디 가면 무조건 말을 붙여요. 그럼 대부분 좋아하더라고요."

―국내에서도 그러나요.

"오토바이 타고 시장에 갔다가 헬멧 벗기가 귀찮아서 그냥 쓰고 들어갔어요. 그랬더니 한 아주머니가 "콘셉트여?" 그러기에 "콘셉트여!" 그랬더니 너무 좋아하시는 거야. 그다음부터 시장에 가면 그분이 냉커피를 사주세요. 그런데 커피 아줌마도 날 보더니 팬이라며 난리가 난 거야. 시장분들이 저녁에 일 마치고 집에 들어가 씻고 TV 켜면 세계테마기행 시작하는 시간이라 많이들 보셨대요. '우리는 시장 일 하느라 아무 데도 못 가는데 대리 만족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많은 분이 화교일 거라 생각하던데.

"유학도 안 가봤어. 충남 당진 합덕이 내 고향 아니여."

신 교수는 2남3녀 중 막내딸이다. 열네 살 때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오빠를 따라 상경했고, 단국대에서 중국어와 중문학을 전공했다.

―대학교 때 중식당에서 일하셨다면서요.

요리하는 신계숙 교수.

"1학년 겨울방학 때 교수님이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집을 소개해주셨어요. '언어를 잘하려면 문화를 알아야 하는데, 중국은 식문화가 최고'라면서요. 거기가 이향방 선생님의 연희동 '향원'이었어요. 서빙 아르바이트를 두 달 했어요. 졸업하고 다시 찾아갔어요. 서빙 가지고는 인생의 답(평생 먹고살거리)이 나오지 않으니 주방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했죠. 이 선생이 '안 된다. 전국의 모든 중식당에 여자는 하나도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 들어가야 한다'고 졸라서 결국 들어갔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중식 주방은 더 엄하고 보수적이었을 텐데요.

"요리사들이 저를 이지메(집단따돌림)했어요. 설거지라도 하려고 수도꼭지를 틀려고 하니 못 틀게 하더라고요. '너는 대학도 나오고 여자인데 왜 우리 밥그릇을 뺏으려 하느냐'면서."

중화요리 대가이자 '대통령·재벌 며느리들의 요리 선생님'으로 유명한 이향방씨는 신 교수에게 '주방에서 사흘을 견디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했다. 신 교수는 8년을 버텼다.

―어떻게 이겨냈나요.

"그냥 견뎠어요. 100일 지나니까 주방장님이 '손을 이렇게 해서 고기를 쥐어봐라. 이만큼이 1인분이다. 주방에선 바빠서 저울에 잴 여유가 없다'면서요. 비로소 받아준 거죠."

―중식 요리사로 쉽게 돈 벌 수 있었는데 다시 대학원 진학이라는 힘든 길을 택했습니다.

"이 선생님이 하시는 식생활문화학회에 가서 만두피 미는 보조를 했어요. 그때 박사과정에 있던 친구가 식품학 공부를 권했어요. 이화여대 대학원 식품학 석·박사 과정에 갔고, 배화여대에 취직했죠."

―다른 일을 생각해본 적 없나요.

"없어요. 음식을 해 먹인다는 건 대단히 큰 힘이 있어요. 맛있게 먹으면 그렇게 기쁠 수 없어요."

―방송을 보니 배경음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노래를 자주 부르시더라고요.

"어떤 상황이나 장면을 보면 노래가 떠올라요. 지금도 김 기자 얼굴을 보니까 계은숙의 '노래하며 춤추며'와 윤항기의 '노래하는 곳에'가 떠오르네."

신 교수는 바로 '노래하며 춤추며'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함께 모여서 흥겨웁게 춤을 춥시다…."

―늘 흥겨운 비결이 있나요.

"즐거워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즐거운 거예요. 즐거우려고 노력하는 거죠. 힘들다고 하면 누가 알아줄 거야. 스스로 기쁘게 살아야죠."

―오토바이는 어떻게 시작했나요.

"재작년 3월에 갱년기 열증이 나서 버스 타고 가다가 내렸어요. 그날로 가서 스쿠터를 샀어요. 더 안전한 오토바이를 타려고 작년 8월 오토바이 면허를 땄고 9월 할리데이비슨을 샀어요."

―기타도, 색소폰도 연주하시죠.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계숙식당)도 개설했고요. 이른바 '중년의 로망'을 모두 실현하며 사는 듯합니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은 바로 해요. 10·20대 때는 하고 싶은 걸 잘 몰랐고, 30·40대는 너무 바빴어요. 저는 쉰 살이 한 살인 것 같아요. 그동안은 내일을 위해 준비하고 저축하고 살았어요. 그렇게 살다가는 늘 오늘이 없잖아요. 그래서 쉰이 되고부터는 오늘 하고 싶은 건 오늘 한다가 됐죠. 얼마 전에는 드론도 하나 사서 띄우고 있어요."

―살면서 가장 잘한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한 거요. 특히 오토바이를 타면서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결혼이나 아이에 대한 후회는 없나요.

"후회 안 해요. 중2 때 고민하다 결심했죠. '조용히 살다가 조용히 가야겠다.' 나는 한번 마음먹으면 잘 안 바꾸는 것 같아요. 외로울 새가 어딨어요. 하루가 얼마나 짧은데."

―방송 섭외가 쏟아진다면서요.

"8월 31일부터 EBS에서 '신계숙의 맛터싸이클'이라는 13부작 프로그램을 시작해요.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다니면서 맛집도 찾고, 사람도 만나고, 요리도 하고, 모터캠핑도 해요. 제대로 노는 게 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은 뭔가요.

"청나라 문인 원매(袁枚)가 쓴 옛 조리서 '수원식단(隨園食單)' 연구가 평생의 과업입니다. 요리법뿐 아니라 요리사가 꼭 알아야 할 20가지, 요리사가 하면 안 되는 14가지 등 이론과 철학이 담겨 있어요. 혀가 좋은 음식이 아닌 몸과 정신을 이롭게 하는 음식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