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0시 20분쯤 서울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된 박원순(64) 서울시장은 시민운동가 출신이다. 3선(選) 서울시장에 오르며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 중 한 명으로 떠올랐지만 미투 의혹에 연루된 가운데 갑작스럽게 사망해 정치권을 충격에 빠트렸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박 시장은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유신(維新)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제적당했다. 이후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법시험 동기다. 박 시장은 짧은 검사 생활을 마친 뒤 변호사로 개업했다. 공안 사건 피의자들을 변호하며 재야(在野)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박 시장은 1990년대 들어 시민운동에 발을 들였다. 1996년부터는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소액주주운동, 예산감시 정보공개운동 등을 전개했다. 기부 물품을 저렴하게 팔아 그 수익으로 다시 기부하는 '아름다운 가게'도 열었다.

文대통령과 함께 22회 사법시험 합격… 장하성과 참여연대 이끌어… 안철수 양보로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2011년 서울시장 당선 - 박원순 서울시장은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사시 동기였다.(맨 왼쪽 사진) 이후 시민운동에 뛰어들어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현 주중대사)과 함께 참여연대를 이끌었고(왼쪽 둘째 사진),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면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지지율 55%에 달했던 안철수 전 의원이 지지율 9%의 박 시장과 끌어안는 장면은 지지자들 사이에서 '아름다운 양보'로 평가받았다.(왼쪽 셋째 사진) 당시 백두대간 종주(縱走) 직후 후보 단일화 기자회견에 나선 박 시장의 덥수룩한 수염도 화제가 됐다. 결국 그해 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으로 당선됐다.(왼쪽 넷째 사진)

박 시장은 진보 성향 시민운동을 이끌었지만 정치권에선 무명에 가까웠다. 그가 제도 정치권에 발을 들인 건 2011년이다. 박 시장은 그해 한나라당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서 치러진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선풍적 대중 인기를 끈 안철수 전 의원의 양보를 등에 업고 야권 단일 후보로 나선 결과였다. 당시 백두대간 종주(縱走) 직후 덥수룩한 수염 차림으로 등장한 박 시장과, 안 전 의원이 그를 끌어안으며 지지 의사를 밝힌 장면은 기성 정치 변화를 위한 '아름다운 양보'로 평가받으며 지지로 이어졌다.

박 시장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 2018년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를 잇달아 꺾고 3선에 성공했다. 최초의 3선 서울시장에 오르는 동안 반값등록금, 무상급식, 비정규직 정규직화, 청년수당, 도시재생 등의 정책 실험을 이어갔다. 기존 개발 중심에서 탈피해 생활 중심 행정을 펼쳤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시정(市政)을 시민운동 하듯 인기 위주로 운영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서울시장을 3선 하는 동안 정무부시장 등에 현 여권 인사들을 다수 기용했고 이 중 상당수가 20·21대 국회에 진출해 여당 내 영향력도 확대했다.

서울 시정을 10년간 경험한 박 시장은 2022년 3월 대선을 준비해왔다. 그는 작년 8월 말 청와대에서 열린 비공개 오찬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좀 더 일하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지난 4·15총선에서 당선된 박홍근, 기동민, 진성준, 김원이 의원 등 가까운 여권 인사들과 자주 접촉하며 대선 진용 구축 방안 등을 논의했다고 한다. 박 시장은 최근에도 자신과 가까운 민주당 의원 17명을 만나 대선 캠페인 전략을 논의하는 등 대선 도전에 의욕을 보였다고 여권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박 시장은 '지금처럼 낮은 자세로 (대선까지) 가야 한다' '카리스마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원들의 의견을 수첩에 받아 적었다"고 했다.

하지만 박 시장은 부하 여직원에 대한 강제추행 혐의로 최근 경찰에 고소가 접수되면서 심적 압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피해를 당했다는 여직원은 최근까지도 박 시장에게 문제를 제기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고위관계자는 "제2의 안희정 사건이라고 할 정도로 정치적인 파장이 예상되는 사건"이라고 했다. 민주당에서는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이어 올해 4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미투 논란에 휘말려 사퇴하며 정치 인생을 마감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박 시장이 어쩌다 미투 사건에 연루됐는지 여권 인사들은 "믿기 어렵고 예상도 못 했다"고 했다.

박 시장의 비극적 소식이 알려진 10일 새벽 여권 인사들은 "이유가 뭐가 됐든 안타깝다"는 반응 속에 "3선 서울시장의 죽음이 몰고 올 정치적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며 우려했다. 여권 핵심 인사들은 극도로 말을 아끼며 비통한 심정을 나타냈다. 한 인사는 "지금은 무슨 말도 하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