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푼의 깜냥도 아닌 것이/ 눈 어둔 권력에 알랑대니/ 콩고물의 완장을 차셨네/ 진보의 힘 자신을 키웠다네/ 아이러니 왜이러니 죽쒀서 개줬니/ 아이러니 다이러니 다를 게 없잖니/ 꺼져라! 기회주의자여."

386 민주화 세대를 대표하는 가수 안치환(55)이 7일 발표한 신곡 '아이러니'를 통해 정치 권력을 쥔 이들을 '기회주의자'라며 통렬히 비판했다. 1984년 연세대 재학 시절부터 가수 활동을 해온 그는 '광야에서' '솔아 푸르른 솔아' 같은 민중가요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내가 만일' 등 수많은 히트곡을 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노제(路祭)에서 노래했으며, 추모 공연과 앨범 제작에 참여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에서도 공연했다.

2009년 5월 29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에서 가수 안치환이 추도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는 이날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등을 불렀다.

안치환은 7일 본지 전화 통화에서 "지금 시민의 힘, 진보의 힘의 결과로 얻어진 과실을 위선자들이 맛있게 잘도 따 먹고 있다"며 "전체 시민과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사람들의 피, 땀, 노력이 그들에게 돌아가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는 위선자들에 대해 "세상을 가장 잘 사는 사람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실행에 옮기는 자들, 똥파리 같은 자들"이라고 정의하며, "그들이 권력과 만났을 때 얼마나 세상이 비참해질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안치환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권력자들 주변에는 언제나 기회주의자들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지금 이쪽에서 그런 꼴을 보고 넘어가기는 비위가 상한다. 그런 것들을 쓰는 게 예술 작품 아니겠느냐. 아프지만 내 안에 있는 잘못된 것들을 고치지 않으면 똑같지 않으냐"고 했다. 곡을 쓰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느냐고 묻자, "그런 건 없다. 주변 인물들에 대한 구체적인 거론으로 해석의 폭을 제한하지 말아 달라. 노래는 듣는 사람의 몫이다. 진영 논리를 떠나서, 내가 생각할 때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고, 옳은 것은 옳은 것'이라고 말하려 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시점과 관점으로 현재를 바라보고자 했다. 난 진짜 적은 어느 편에 있기보단 양심과 정의 밖에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안치환은 30여년 전 고(故) 김남주 시인과의 일화를 언급했다. "김남주 시인은 민주화와 인간 해방을 위해 힘쓰다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분이다. 그분의 시 중 '자유'로 노래를 만든 적이 있다. 이 노래를 들은 한 선배가 '왜 우리 편을 비판하는 노래를 부르느냐'고 하더라. 그 말을 선생님께 했더니, '그 노래를 듣고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부끄러워해야 해'라고 말씀하셨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오늘 발표한 노래가 이 노래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노래 '자유'엔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소리 높여/ 자유여 해방이여 통일이여 외치면서/ 속으론 워… 속으론 제 잇속만 차리네"라는 대목이 나온다.

신곡 '아이러니'는 강렬한 사운드에 포효하는 창법이다. 가사도 "끼리끼리 모여 환장해 춤추네/ 싸구려 천지 자뻑의 잔치뿐/…/ 쩔어 사시네 서글픈 관종이여"라며 날카롭게 튀어나온다. 올해 발매한 세 번째 싱글. 안치환은 신곡을 기획한 의도에 대해 "세월은 흘렀고 우리들의 낯은 두꺼워졌다. 그날의 순수는 나이 들고 늙었다. 어떤 순수는 무뎌지고 음흉해졌다. 밥벌이라는 숭고함의 더께(찌든 때)에 눌려 수치심이 마비되었다. 권력은 탐하는 자의 것이지만 너무 뻔뻔하다. 기회주의자들의 생명력은 가히 놀라울 따름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