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고 습하다. 사랑하는 이가 옆에 있어도 짜증 나기 좋은 날씨다. 이미 한국 기후는 온대에서 아열대로 바뀐 것 같다. 한데 정작 아열대기후에 사는 태국 사람들이 화내는 모습은 못 봤다. 넷플릭스 음식 다큐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에서도 영국 소설가 로런스 오즈번은 "서로 소리 지르며 싸우는 커플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유는 바로 풍부한 식재료로 만들어내는 눈과 코와 입이 즐거운 음식 때문! 팟타이, 푸팟퐁커리, 쏨땀은 잊자. 여름밤을 행복하게 해 줄 기발한 태국 음식이 수두룩하다.

태국식 '치맥'

태국에서 라면은 대표 브랜드를 따 '마마'라고 한다. 면은 가늘고 분말 소스는 매콤새콤한 맛이 난다. 생으로 먹는 게 더 맛있다.

덥고 습한 여름밤 태국식 치킨과 라면, 시원한 생맥주와 보랏빛 진토닉이 있다면 휴양지를 따로 갈 필요가 없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 '쌉'.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서울 경리단길 '쌉'의 김훈 대표다. 메뉴 이름도 '마마, 드랍 더 누들'. 라면의 반은 라면땅으로, 반은 데친 후 오징어, 견과류, 토마토 등과 함께 냉라면 형태로 나온다.

"여름밤은 치맥이지!"라는 이들을 위한 태국식 치킨도 있다. 태국 '남프릭 파오' 소스를 기본으로 엔초비, 버터 등을 넣어 숙성시킨 소스를 발랐다. 데리야키치킨과 비슷한데 덜 달고 풍미가 더 있다. 메뉴 두 개를 시키면 창 생맥주 두 잔을 9800원에 판다. 맥주가 싫다면 태국식 진토닉도 있다. 태국 안찬티가 들어가 보랏빛을 낸다.

김 대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슐랭 3스타인 '퀸스'에서 바닥부터 일을 배웠다. 이후 전 세계 60국 200여 도시를 돌며 음식 공부를 했단다.

태국 고기국수 '소이연남마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란 뜻인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는 1960년대 홍콩이 배경이지만, 촬영은 태국 방콕에서 했다. 영화 스틸 홍보샷에 나오는 두 사람이 사이 좋게 국수를 먹는 식당도 태국 음식점이다.

서울 강남구 '소이연남마오'의 '그린커리 누들'.

서울 강남구 '소이연남마오'에서는 태국의 대표적인 '소고기국수'를 판다. 진한 갈색 국물에 큼직한 소고기, 먹고 나면 한방 재료 가득한 삼계탕을 먹은 듯 힘이 난다. 살짝 나는 신맛은 고기 국수 특유의 느끼함을 없애준다. 국물에 찹쌀밥을 추가해 말아 먹어도 맛있다. 고추식초, 매운 고춧가루, 피시 소스 등으로 원하는 스타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17세기 태국은 중국·인도뿐 아니라 아랍·포르투갈에서도 여행 오던 관광도시였다. 그래서 태국 요리는 태생부터 '퓨전'. 특히 인도에서 넘어와 고추에 허브, 코코넛 등으로 맛을 낸 '그린커리'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18세기 중국 상인이 전한 '그린커리 국수'도 달콤하고 고소하다. 내추럴 와인이 어울린다.

임동혁 소이연남마오 대표는 툭툭누들타이부터 소이연남까지 국내에 태국 음식을 대중화한 사람. 첫 해외여행지도 태국, 어릴 때부터 신맛을 좋아해 라면에도 식초를 넣어 먹었다고 한다.

태국 왕실 요리 '미앙'

태국의 금기 중 하나는 군주제에 대한 토론이다. 따라서 태국왕 라마 4세와 영국 출신 가정교사인 안나의 로맨스를 다룬 '왕과 나'는 금지 영화다. 태국 왕실은 지금도 전 국민의 존경을 받는다.

압구정 '미앙'의 김유아 셰프는 태국 왕실요리학교를 졸업했다. 김 셰프가 만든 비취색 꽃모양의 궁중 만두는 보기만 해도 즐겁다. 김 셰프의 추천은 '미앙퐁커리'. 직접 절구에 허브를 넣고 빻아 만든 커리에 꽃게살을 발라 넣고 푹 끓였다. 푸팟퐁커리보다 먹기 편하면서 깊은 맛이 난다. 태국 대사관 사람들도 이것을 먹기 위해 종종 온다고 한다.

태국은 해산물과 과일이 맛있는 곳이다. 그 맛을 즐기려면 새우와 자몽, 레몬그라스, 샬럿칩이 듬뿍 들어간 상큼한 '쏨오'가 제격이다. 왕실 음식이라 그런지 맛과 향이 세진 않다. 그래서 일반 와인과도 잘 어울린다. 위스키에 소다수를 탄 칵테일 '하이볼'도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