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고 습하다. 사랑하는 이가 옆에 있어도 짜증 나기 좋은 날씨다. 이미 한국 기후는 온대에서 아열대로 바뀐 것 같다. 한데 정작 아열대기후에 사는 태국 사람들이 화내는 모습은 못 봤다. 넷플릭스 음식 다큐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에서도 영국 소설가 로런스 오즈번은 "서로 소리 지르며 싸우는 커플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유는 바로 풍부한 식재료로 만들어내는 눈과 코와 입이 즐거운 음식 때문! 팟타이, 푸팟퐁커리, 쏨땀은 잊자. 여름밤을 행복하게 해 줄 기발한 태국 음식이 수두룩하다.
◇태국식 '치맥'
태국에서 라면은 대표 브랜드를 따 '마마'라고 한다. 면은 가늘고 분말 소스는 매콤새콤한 맛이 난다. 생으로 먹는 게 더 맛있다.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서울 경리단길 '쌉'의 김훈 대표다. 메뉴 이름도 '마마, 드랍 더 누들'. 라면의 반은 라면땅으로, 반은 데친 후 오징어, 견과류, 토마토 등과 함께 냉라면 형태로 나온다.
"여름밤은 치맥이지!"라는 이들을 위한 태국식 치킨도 있다. 태국 '남프릭 파오' 소스를 기본으로 엔초비, 버터 등을 넣어 숙성시킨 소스를 발랐다. 데리야키치킨과 비슷한데 덜 달고 풍미가 더 있다. 메뉴 두 개를 시키면 창 생맥주 두 잔을 9800원에 판다. 맥주가 싫다면 태국식 진토닉도 있다. 태국 안찬티가 들어가 보랏빛을 낸다.
김 대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슐랭 3스타인 '퀸스'에서 바닥부터 일을 배웠다. 이후 전 세계 60국 200여 도시를 돌며 음식 공부를 했단다.
◇태국 고기국수 '소이연남마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란 뜻인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는 1960년대 홍콩이 배경이지만, 촬영은 태국 방콕에서 했다. 영화 스틸 홍보샷에 나오는 두 사람이 사이 좋게 국수를 먹는 식당도 태국 음식점이다.
서울 강남구 '소이연남마오'에서는 태국의 대표적인 '소고기국수'를 판다. 진한 갈색 국물에 큼직한 소고기, 먹고 나면 한방 재료 가득한 삼계탕을 먹은 듯 힘이 난다. 살짝 나는 신맛은 고기 국수 특유의 느끼함을 없애준다. 국물에 찹쌀밥을 추가해 말아 먹어도 맛있다. 고추식초, 매운 고춧가루, 피시 소스 등으로 원하는 스타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17세기 태국은 중국·인도뿐 아니라 아랍·포르투갈에서도 여행 오던 관광도시였다. 그래서 태국 요리는 태생부터 '퓨전'. 특히 인도에서 넘어와 고추에 허브, 코코넛 등으로 맛을 낸 '그린커리'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18세기 중국 상인이 전한 '그린커리 국수'도 달콤하고 고소하다. 내추럴 와인이 어울린다.
임동혁 소이연남마오 대표는 툭툭누들타이부터 소이연남까지 국내에 태국 음식을 대중화한 사람. 첫 해외여행지도 태국, 어릴 때부터 신맛을 좋아해 라면에도 식초를 넣어 먹었다고 한다.
◇태국 왕실 요리 '미앙'
태국의 금기 중 하나는 군주제에 대한 토론이다. 따라서 태국왕 라마 4세와 영국 출신 가정교사인 안나의 로맨스를 다룬 '왕과 나'는 금지 영화다. 태국 왕실은 지금도 전 국민의 존경을 받는다.
압구정 '미앙'의 김유아 셰프는 태국 왕실요리학교를 졸업했다. 김 셰프가 만든 비취색 꽃모양의 궁중 만두는 보기만 해도 즐겁다. 김 셰프의 추천은 '미앙퐁커리'. 직접 절구에 허브를 넣고 빻아 만든 커리에 꽃게살을 발라 넣고 푹 끓였다. 푸팟퐁커리보다 먹기 편하면서 깊은 맛이 난다. 태국 대사관 사람들도 이것을 먹기 위해 종종 온다고 한다.
태국은 해산물과 과일이 맛있는 곳이다. 그 맛을 즐기려면 새우와 자몽, 레몬그라스, 샬럿칩이 듬뿍 들어간 상큼한 '쏨오'가 제격이다. 왕실 음식이라 그런지 맛과 향이 세진 않다. 그래서 일반 와인과도 잘 어울린다. 위스키에 소다수를 탄 칵테일 '하이볼'도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