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은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자 이를 수용한 뒤 사표를 던졌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는 지휘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김 전 총장은 6일 본지 인터뷰에서 "내가 사표를 내긴 했어도 천 전 장관과는 매일 얼굴을 맞대고 때로는 와인잔을 부딪치며 토론하고 상대 의견을 경청했다"며 "그때도 장관이 검사 출신은 아니었지만 내가 나가면서도 장관을 장관으로서 존경했고, 장관도 나를 예우해줬다. 지금처럼 장관과 총장이 서로 적군(敵軍) 대하듯 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2005년 10월 17일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김종빈(왼쪽) 검찰총장이 퇴임식 후 천정배 법무부 장관을 방문, 장관실로 들어가고 있다. 당시 천 장관이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며 헌정 사상 처음으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자 김 총장은 이를 받아들이고는 사표를 던졌다. 노무현 정부 때의 일이었다.

김 전 총장은 2005년 당시 상황에 대해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4대 개혁 입법' 중 하나인 국보법 철폐가 야당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반대로 국회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며 "강정구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은 하나의 단초였을 뿐, 노무현 대통령이 국보법을 낙태죄처럼 법에는 있지만 적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문화시켜 달라고 검찰에 요청한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총장은 "이 문제를 놓고 천 전 장관과 전화도 많이 하고 오랜 기간 논의를 했다"면서 "검찰 입장에서는 법이 살아 있고 국회 논의조차 못 하는 엄중한 사건을 검찰 임의로 사문화시킬 수는 없다고 판단해 거절한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총장은 "나는 완강했고 천 전 장관 역시 직무에 충실하다 보니까 정권의 입장을 밀고 나갈 수밖에 없어 지휘권을 발동한 것"이라며 "그로 인해 내가 사표를 냈지만 지금도 업무상 일어난 일로 생각할 뿐 천 전 장관을 비난하거나 원망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시 구속·불구속 여부는 생각의 차이일 뿐 위법하거나 부당한 차원의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수사지휘권을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고도 했다. 김 전 총장은 "지금 윤석열 총장의 상황은 나 때와는 다른 것 같다"면서 "어떠한 경우에라도 검찰의 총책임자는 총장일 수밖에 없는데 총장 지휘권을 박탈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측면에서 윤 총장이 사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 전 총장은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 총장의 수사지휘권 갈등에 대해 "추 장관과 윤 총장은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왜 서로 한 번 만나보지도 않느냐"며 "천 전 장관과 나는 갑론을박 토론은 했지만 원수처럼 싸운 일은 없다. 왜 인간성마저 저버리면서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장이 비판의 대상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추 장관 쪽에 더 무게를 둔 비판으로 해석됐다. 추 장관이 취임 7개월을 맞았지만 윤 총장을 만난 것은 1월과 2월 두 차례 공개 행사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추 장관은 취임 이후 두 차례 대규모 검사 인사를 했지만 윤 총장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대통령에게 제청한다'는 검찰청법에 명시된 규정조차 지키지 않은 것이다. 지난 1월 '정권 수사' 검사들을 대거 좌천시키는 인사를 하면서 대검에 인사안을 전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윤 총장을 법무부로 불렀다가 윤 총장이 응하지 않자 "내 명을 거역했다"며 오히려 공격했다. 최근엔 "내 지시의 절반을 잘라먹고" "지휘랍시고 해서 일을 꼬이게"라며 윤 총장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2005년 첫 검찰총장 지휘권 발동

2005년 10월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 대해 '불구속 수사하라'며 검찰청법 8조에 따른 지휘권을 발동하자 김종빈 검찰총장은 이를 수용한 뒤 검찰 수사의 독립성이 침해당했다는 항의 표시로 사퇴했다. 이후 15년 만에 추미애 장관이 지휘권을 발동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