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3일 국정원장,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통일부 장관을 교체하는 안보 라인 개편을 통해 남은 임기 동안 대북(對北) 유화 정책에 '올인'하겠다는 승부수를 던졌다.

박지원 국정원장 내정자, 서훈 안보실장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남북 정상회담 등 대북 접촉을 주도했던 대표적 '북한 라인'이다. 박 내정자는 현 정부 들어 야당 출신 인사의 첫 기용으로, 북한 문제에 대한 절박한 상황을 방증한다. 이인영 장관 내정자는 전대협 의장 때부터 통일 운동을 해왔고, 남북 협력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북한이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와 군사 위협을 통해 판문점 선언을 사실상 파기했지만, 문 대통령은 북한과 협상했던 경험이나 대북 유화론자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일부에서는 이번 인사를 통해 '자주파'를 전면에 내세우고,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동맹파'는 배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훈(오른쪽) 청와대 신임 국가안보실장이 3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지명받은 뒤 청와대 브리핑실에서 연단에 오르고 있다. 왼쪽은 이임사 후 떠나는 정의용 실장.

문 대통령은 최근 "남북 관계의 성과를 뒤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이 나의 확고한 의지"라며 기존 정책에 대한 고수 의지를 밝혔다. 청와대와 여권 내부에서도 그동안 "너무 미국 눈치를 보며 남북 관계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이런 여권 내 비판이 이번 인사에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연초부터 남북 관계에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미국에 보내 미·북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을 동시에 추진하는 구상을 미국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이 이번 인사 이후 당장 문 대통령과의 대화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최근 문 대통령이 정의용 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을 대북 특사로 제안했지만 거절했다는 사실을 공개했었다. 북한은 특히 박지원 국정원장 내정자에 대해서는 작년 8월 "자기가 6·15시대 상징적인 인물이나 되는 것처럼 주제넘게 자칭한다" "설태 낀 혓바닥을 마구 놀려대며 구린내를 풍기었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었다. 박 내정자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두고 "최소한의 금도를 벗어난 것으로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한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선대(先代)와 인연을 중시하는 북한의 특성상 박지원 내정자가 김정일 위원장 시절 대북 문제에 관여했던 점을 평가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번 인사에서 미국 및 북핵 전문가들이 배제되면서 한미 관계의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과의 관계는 정의용 안보실장이 주도해왔다. 정 실장의 후임에 임명된 서훈 안보실장은 국정원장 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장관과 호흡을 맞춰왔다. 그러나 정통 외교부 관료가 아닌 대북 및 정보 전문가이기 때문에 한미 동맹 악화를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번 안보 라인 교체 인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교체하지는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외부의 비판과 달리 강 장관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임은 각별하다"고 했지만, 후속 인사에서 교체 가능성도 있다. 북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은 지난달 정경두 국방 장관에게 "경박하고 우매하다"며 비난했었다. 여권 관계자는 "정 장관도 교체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