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서 운동을 담당한 신경세포가 망가지면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다. 뇌가 멀쩡해도 척수가 손상되면 역시 운동 신경세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하반신이 마비된다. 과학자들이 동물실험을 통해 망가진 신경세포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견디듯, 다른 세포를 신경세포로 만들어 운동 기능을 회복하는 방식이다. 이런 '신경세포 돌려막기'가 발전하면 파킨슨병이나 척수마비 환자의 재활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뇌 속 보급부대를 전투부대로 재편

미국 UC샌디에이고의 시앙-둥 푸 교수 연구진은 지난 24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신경아교세포의 하나인 성상아교세포(성상세포)를 뇌 신경세포로 바꿔 쥐의 파킨슨병 증세를 치료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신경아교세포는 신경신호 전달은 하지 않고 대신 그런 일을 하는 신경세포를 보호한다. 미세아교세포와 희소돌기아교세포, 그리고 성상세포 3종류가 있다. 성상세포는 이름대로 별모양으로, 혈관과 신경세포를 연결하면서 영양분을 제공한다. 연구진은 신경아교세포가 신경세포보다 크기는 10분의 1이지만 수는 10배나 더 많다는 데 주목했다. 신경세포가 망가져도 주변에 흔한 신경아교세포로 대체하면 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앞서 연구진은 PTB란 단백질이 성상세포가 신경세포로 발전하지 못하게 막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빗장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풀기만 하면 된다. 열쇠는 간섭RNA였다. 유전물질인 RNA는 DNA의 유전정보를 그대로 복사해 단백질을 합성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길이가 짧은 RNA는 단백질 합성 대신 유전자 기능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이 RNA로 PTB 단백질의 합성을 차단했다. 그러자 성상세포가 신경세포처럼 도파민을 분비하기 시작했다.

파킨슨병은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가 망가져 운동기능을 잃고 온몸이 떨리는 질환이다. 심하면 인지기능마저 망가진다. 연구진은 약물로 생쥐의 뇌에서 도파민성 신경세포를 망가뜨렸다. 생쥐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여기에 간섭RNA를 주사하자 다시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운동기능이 개선됐다. 쥐의 뇌를 보니 신경세포가 비어 있던 곳이 채워져 있었다. 신경세포가 뇌의 주력군이라면 성상세포는 보급을 맡은 부대로 볼 수 있다. 주력이 무너지는 위기 상황에서 보급부대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중국 신경과학연구원 과학자들은 유전자 교정기술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지난 4월 국제 학술지 '셀'에 발표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원하는 곳의 DNA를 잘라내고 다른 DNA로 대체하는 효소단백질이다. 연구진은 파킨슨병을 유발한 쥐를 대상으로 뇌의 성상세포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주입했다. 그러자 PTB를 만드는 유전자가 차단되면서 신경세포로 바뀌었다. 운동 기능도 회복됐다.

◇피부세포를 운동 신경세포로 바꿔

과학자들은 병에 걸려 기능을 잃은 세포를 줄기세포로 대체하는 연구를 오랫동안 진행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줄기세포가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배아줄기세포나 이와 유사한 유도만능줄기세포는 어떤 형태의 세포로도 자랄 수 있지만, 분화 능력이 워낙 뛰어나 통제를 못 하면 암세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의 김정범 교수 연구진은 줄기세포 대신 환자의 피부세포로 손상된 신경세포를 대체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목표는 척수마비 환자였다. 척추뼈 안에 있는 신경조직인 척수는 한 번 손상되면 회복이 어렵다. 사고로 척수를 다치면 뇌에서 보낸 신경신호가 팔다리로 전달되지 못해 하반신 마비에 이른다.

김 교수는 환자의 피부세포에 줄기세포로 만드는 유전자와 신경세포로 만드는 유전자 두 가지를 주입해 바로 신경세포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신경세포를 뒷다리를 쓰지 못하는 쥐에게 주입하자 신경이 재생됐다. 8주 뒤 쥐는 뒷다리를 움직일 수 있었다.

김정범 교수는 "기존에도 피부세포를 바로 신경세포로 만들었지만 얻을 수 있는 세포 수가 제한적이었다"며 "이번에는 세포의 자가증식 과정을 거치도록 해 환자 치료에 쓸 만큼 운동신경세포를 대량 생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결과는 유럽분자생물학회가 발간하는 국제 학술지 '이라이프(eLife)'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