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하남 미사강변도시의 한 아파트에 사는 이모(65)씨는 최근 집주인에게서 전세금을 8000만원이나 올려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다른 전셋집을 알아보려 했지만 최근 집값 상승, 대출 규제 등으로 주택 매수 수요가 대거 전세로 돌아선 데다, 3기 신도시 청약에 필요한 거주 요건을 채우려는 무주택자까지 몰리며 하남에선 전셋집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이씨는 결국 전세금을 6000만원 올려주고 계약을 2년 연장하기로 했다. 이씨는 "전세금을 올려주려고 정기예금을 깨고 대출을 알아보고 있지만, 소득이 없어 대출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요즘 전세 매물 씨가 말랐다" - 서울 마포구의 한 중개업소에 전용면적 84㎡ 아파트 전셋값이 9억원이란 안내문이 붙어있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요즘 전세 매물이 씨가 말랐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이 1년 새 3000만원 가까이 올랐다.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며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지만, 정작 집값은 못 잡고 전셋값이 폭등하며 서민들 부담이 커지고 있다. 다(多)주택자, 고가 주택 소유자들을 겨냥했다는 정책이 결과적으로 서민을 괴롭히는 역설이 벌어진 것이다. 특히 현 정부 들어 각종 세금 혜택을 받는 데 필요한 주택 소유자의 의무 거주 요건을 강화하는 추세여서 전세 수요가 많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세난이 심해지고 있다.

1년 새 전셋값 3000만원 급등

30일 KB국민은행이 발표한 '월간 주택 시장 동향'에 따르면, 6월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전달 대비 0.27% 올랐다. 이씨가 사는 하남시 아파트 전셋값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1.7%)을 기록했다.

특히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지난 1년 새 3000만원 가까이 상승했다. 6월 15일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4억9148만원으로, 지난해 6월보다 2892만원(6.3%) 올랐다. 작년 5월부터 14개월 연속 상승한 것이다. 2년 전 대비 4145만원(9.2%) 올랐고, 4년 전과 비교하면 8203만원(20%)이나 급등했다. 연평균 2000만원 이상 오른 셈이다.

전셋값 상승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의 전·월세 거래량은 6월 6085건으로, 지난 2월(1만8999건) 이후 넉 달 연속 감소했다. 특히 지난 5월(9584건)에 이어 두 달 연속 1만건을 밑돌고 있다. 서울 아파트의 월별 전·월세 거래량이 1만건 밑으로 내려간 것은 2011년 관련 통계를 낸 이래 지난 5월이 처음이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6월 서울의 전세수급지수(100보다 크면 공급 부족)는 173.5로, 수요가 공급을 훨씬 앞섰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갭 투자(전세 낀 주택 매입)'를 막으려는 정부의 대출 규제와 실거주 강화, 임대 사업자 혜택 축소 등으로 전세 공급이 감소하고 있다"며 "둔촌주공아파트 같은 대단지 재건축으로 전세가 사라지고, 반포주공 1단지 3주거구역과 청담동 삼익아파트 등 재건축 이주 수요로 전셋값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엔 전세난 한층 심해질 전망

전세난이 내년에는 한층 심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게 더 큰 문제다. 새 아파트 공급 물량이 줄면서 전세 공급량도 감소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보 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내년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은 13만6336가구로, 올해 입주 물량(18만7991가구)보다 5만여 가구가 줄어든다. 특히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2만5021가구로, 올해 입주 물량(4만7447가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유동성이 풍부한 가운데 정부의 공급 없는 수요 억제 정책이 집값 불안정을 부추기고 있다"며 "올가을 전셋값이 오르면서 집값도 밀어올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