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숙 '쓰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서' 저자

책이 나왔지만 정작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말을 못 했다. 쑥스러웠다. 친구가 읽고 책에 나온 아재들에게 전화를 했다. "혜숙이가 책 냈습디다. 약속했으면 지키시오."

어느 날 고향에 갔을 때 오빠가 시집간 지 오래된 동생을 "글 쓴다"고 소개했다. 오빠가 책을 좋아하거나 내가 글을 쓰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시골에서 시집간 딸 자랑하는 것을 오빠는 숱하게 보았다. 그 연장선상에서 느닷없이, 관심도 없으나,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글을 쓴다"고 한 것이다.

아무튼 그 말을 들은 아재들이 책을 냈느냐고 물었고, 내면 100권, 300권을 사겠노라는 약속을 했었다. 시골에서 서울에 올라가 벌어 먹고 살기 쉽지 않았을 아재들은 고향에 오면 절대로 타향살이가 팍팍하노라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 따뜻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을 그날 적었다. 그 내용까지 들어가 책이 만들어졌다. 책을 읽은 친구는 그날 떵떵거린 내 아재들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재촉했다.

300권을 약속한 아재는 가운을 만들어 판다. 말은 그랬다. "(네 책을) 가운에 넣어 접어 팔겠다." 서울 가락동에서 채소를 받아 판다는 아재는 누가 조카의 시집을 사 달라 해서 산 적이 있으니 자기도 그렇게 팔겠노라 했었다. 명절 끝이라 오빠를 비롯해 다 취중이었다. 그저 그렇게 말해주는 아재들이 좋았을 뿐 책을 냈다고 해서 떠넘길 마음은 없었다.

친구 연락을 받은 두 아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약속한 것보다는 많이 줄여서 샀지만 그들에게 빚을 지고 말았다. 나는 좋다. 책을 팔아서 좋은 것이 아니라 결혼한 지 50년 되어가는 내가 마을에서 같이 자란 아재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으로 좋다. 집을 떠나 어느 고을에서 늙어가고 있지만 강아지 줄처럼 내 고향에 묶여 있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