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잘나가던 상장지수펀드(ETF)마저 싹을 자를 셈인가."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지난 25일 정부가 발표한 '금융세제 선진화 추진 방향'에 대해 이런 불만이 나오고 있다. ETF는 최근 개인 투자자 사이에서 '저비용 분산투자' 수단으로 주목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단돈 1만원을 벌어도 20%를 세금으로 내는 불리한 과세 체계 탓에 ETF 매력이 뚝 떨어지게 된 것이다. 반면 해외 증시에 상장된 ETF를 '직구'하면 매매 차익 250만원까지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금융권에서는 "개인 투자자 자금이 해외로 쏠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세금 안 내던 국내 주식형 ETF, 앞으론 공제 한 푼 없이 세금 폭탄

ETF란 코스피나 다우존스지수 같은 특정 지수와 연동돼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금융 상품을 말한다. 여러 종목에 분산투자한다는 점에서는 펀드와 마찬가지지만, 일반 주식처럼 쉽게 사고팔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운용 수수료도 펀드보다 싼 경우가 많아 거래 비용도 덜 든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ETF 순자산 총액은 2016년 25조1018억원에서 올해 5월 47조3382억원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문제는 오는 2022년부터는 이 같은 ETF의 매력이 상당 부분 사라진다는 점이다. 정부는 ETF를 펀드와 마찬가지로 '집합투자증권'으로 분류한다. 지금껏 국내 주식에만 투자하는 펀드·ETF는 양도 차익에 대해 세금을 내지 않았지만, 오는 2022년부터 매매 차익의 20%를 금융투자소득세로 물리겠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1만원을 벌어도 2000원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것이다.

반면 개별 주식에 직접 투자할 때는 간접투자보다 세금 면에서 유리하다. 정부는 2023년부터 주식 매매 차익에 20%를 과세하기로 했지만, 연간 2000만원까지는 세금을 물리지 않기로 했다. 이 때문에 주식 직접투자와 펀드·ETF를 통한 간접투자를 차별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본지 30일 자 B1면〉.

◇국내 ETF로 100만원 벌면 세금 20만원, 해외 상장 ETF는 0원

국내 ETF와 해외 ETF를 역차별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같은 기초 자산에 투자하는 ETF라도, 국내 증시에 상장한 ETF와 미국 증시에 상장한 ETF에 다른 과세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A씨가 다우존스 지수를 추종하는 국내 상장 ETF에 1000만원 투자해 100만원을 벌었다고 해보자. 이 경우에는 세금을 면제해주는 기본 공제가 '0원'이다. 버는 족족 세금(금융투자소득세·20%)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 경우 세금으로 20만원 내야 하고, 80만원만 A씨 호주머니에 들어온다. 반면 똑같이 다우존스 지수를 추종하는 미국 상장 ETF에 투자해 세전(稅前) 수익률이 10%로 같은 경우, 세후(稅後) 수익률 면에서 차이가 난다. 해외 상장 ETF는 집합투자증권(펀드)이 아닌 '해외 주식'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해외 주식, 국내 비상장 주식, 채권, 파생상품에서 번 돈을 묶어 250만원까지는 세금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이에 따라 100만원을 번 A씨는 세금을 안 내고 100만원 모두 챙길 수 있다.

앞으로 같은 기초자산을 담은 ETF가 국내·해외에 다 있을 경우, 해외 ETF를 사는 게 세금 면에서 유리한 것이다. 국내 금융 상품에 세제 측면에서 혜택을 줘도 모자랄 판에 역차별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금융 세제 개편 방안은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면서 "공청회 등을 통해 각계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고 했다.

◇국내 레버리지·인버스 ETF 진입 장벽 높여… 해외 ETF는 상관없어

앞서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레버리지·인버스 ETF 규제 대책 역시 국내 ETF 시장에는 타격을 줄 전망이다. 레버리지 ETF는 가격이 기초 자산의 가격 변동 폭 2배씩 오르내리는 상품이다. 인버스 ETF는 지수가 하락할수록 돈을 버는 '청개구리형' 상품이다.

금융 당국은 코로나 사태로 변동성이 심해지는 와중에 개인 투자자의 레버리지·인버스 ETF 투자가 늘자 지난 5월 규제책을 발표했다. 레버리지·인버스 ETF에 투자하려면 사전 교육을 이수해야 하고, 증권사에 1000만원을 기본 예탁금으로 맡겨 두라는 내용 등이다. 반면 해외 증시에는 3배 레버리지 ETF 등 훨씬 위험한 상품이 있지만 이런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금융권에서는 "고수익을 좇는 투자 자금이 대거 해외 ETF로 쏠릴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