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들어 집값을 잡겠다며 22번이나 부동산 정책이 나왔다. 하지만 서민들의 내집 마련은 더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엔 내집 마련은 고사하고, 전세집 구하기마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30일 “정책은 다 종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했다.

30일 서울 마포구 부동산.



◇하늘의 별따기 된 전셋집 구하기

경기도 하남 미사강변도시의 한 아파트에 사는 이모(65)씨는 최근 집주인에게서 전세금을 8000만원이나 올려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주변에 전셋집을 구할 수가 없었다. 최근 집값 상승, 대출 규제 등으로 주택 매수 수요가 대거 전세로 돌아선 데다, 3기 신도시 청약에 필요한 거주 요건을 채우려는 무주택자까지 몰리며 하남에선 전셋집을 찾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이씨는 결국 전세금을 6000만원 올려주고 계약을 2년 연장하기로 했다. 이씨는 "전세금을 올려주려고 정기예금을 깨고 대출을 알아보고 있지만, 소득이 없어 대출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며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지만, 정작 집값은 못 잡고 전셋값이 폭등하며 서민들 부담이 커지고 있다. 다(多)주택자, 고가 주택 소유자들을 겨냥했다는 정책이 결과적으로 서민을 괴롭히는 역설이 벌어진 것이다. 특히 현 정부 들어 각종 세금 혜택을 받는 데 필요한 주택 소유자의 의무 거주 요건을 강화하는 추세여서 전세 수요가 많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세난이 심해지고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30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3차 추경안 편성과 관련해 부처의 기금운용변경안에 대해 제안설명하고 있다.



◇1년 새 전셋값 3000만원 급등

30일 KB국민은행이 발표한 '월간 주택 시장 동향'에 따르면, 6월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전달 대비 0.27% 올랐다. 이씨가 사는 하남시 아파트 전셋값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1.7%)을 기록했다.
특히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지난 1년 새 3000만원 가까이 상승했다. 6월 15일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4억9148만원으로, 지난해 6월보다 2892만원(6.3%) 올랐다. 작년 5월부터 14개월 연속 상승한 것이다. 2년 전 대비 4145만원(9.2%) 올랐고, 4년 전과 비교하면 8203만원(20%)이나 급등했다. 연평균 2000만원 이상 오른 셈이다.
전셋값 상승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의 전·월세 거래량은 6월 6085건으로, 지난 2월(1만8999건) 이후 넉 달 연속 감소했다. 특히 지난 5월(9584건)에 이어 두 달 연속 1만건을 밑돌고 있다. 서울 아파트의 월별 전·월세 거래량이 1만건 밑으로 내려간 것은 2011년 관련 통계를 낸 이래 지난 5월이 처음이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6월 서울의 전세수급지수(100보다 크면 공급 부족)는 173.5로, 수요가 공급을 훨씬 앞섰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갭 투자(전세 낀 주택 매입)'를 막으려는 정부의 대출 규제와 실거주 강화, 임대 사업자 혜택 축소 등으로 전세 공급이 감소하고 있다"며 "둔촌주공아파트 같은 대단지 재건축으로 전세가 사라지고, 반포주공 1단지 3주거구역과 청담동 삼익아파트 등 재건축 이주 수요로 전셋값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입주 물량 반 토막… 전세난 심화 우려

전세난이 내년에는 한층 심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게 더 큰 문제다. 새 아파트 공급 물량이 줄면서 전세 공급량도 감소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보 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내년 수도권 아파트 입주 물량은 13만6336가구로, 올해 입주 물량(18만7991가구)보다 5만여 가구가 줄어든다. 특히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2만5021가구로, 올해 입주 물량(4만7447가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유동성이 풍부한 가운데 정부의 공급 없는 수요 억제 정책이 집값 불안정을 부추기고 있다"며 "올가을 전셋값이 오르면서 집값도 밀어올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현미 장관 "정책은 종합적으로 작동"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부동산 대책이 실패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에 대해 30일 "정책은 다 종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부인했다.
김 장관은 이날 오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노무현 정부 때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도 말씀하셨지만, 집값으로 상당히 논란 많다.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듯하다"는 무소속 이용호 의원의 질의에 이 같이 답했다. 김 장관은 "(지금까지 낸 부동산 정책들이) 실패한 것 아니냐"는 이 의원 질의에도 "종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김 장관은 이어 "정책이 시행된 것이 있고 아직 안 된 것도 있다"며 "모든 정책이 종합 작동하는 결과를 추후에 봐야 한다"고 했다. 또 "12·16 부동산 대책 같은 경우에는 종합부동산세제 강화 등을 발표했지만, 아직 세법이 통과되지 않아서 결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김 장관은 이 의원과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횟수를 두고도 말싸움을 벌였다. 이 의원이 "22번째 부동산 대책을 냈느냐"고 하자, 김 장관은 "4번째 냈다"고 했다. 이 의원이 "(언론) 보도에 나온 것은 잘못된 것이냐"고 묻자 김 장관은 "언론들이 온갖 정책들을 다 부동산 정책이라고 카운트해서 만들어낸 숫자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론이) 주거복지 정책도 다 부동산 대책에 다 포함해 그런 것이다. 숫자에 대해 논쟁할 생각은 없지만, 의원님이 모르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린다"고 했다. 김 장관의 답변에 이 의원은 "집 없는 서민들이 느끼는 애절한 마음이 장관 답변으로는 잘 전달이 안 된다"며 "지금 (집값은) 이미 천정부지로 올랐다. 집값 폭등 때문에 집 없는 서민이 애로를 느끼고 전세금 폭등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했다.

◇참여연대도 "부동산 정책은 실패"

현 정부 부동산 대책은 친여(親與) 성향의 시민단체도 강도 높게 비판하는 사안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29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사실상 실패했다"며 "집값 상승에 따른 국민의 분노와 불안은 점점 커지고 있다"고 했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은 지난 23일 문재인 정부 3년간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 52%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부동산 문제가 악화하는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장관이 "부동산 대책이 작동하고 있다"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한 것이다.
한편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예결위에서 집값 폭등 등 부동산 대책과 관련, "정부의 많은 노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체적으로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 총리는 다주택자인 일부 청와대 참모가 집을 팔지 않는 데 대해선 "공직자가 솔선(수범)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