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포터'와 기아자동차의 '봉고' 같은 1t 트럭은 통상 경기가 나쁠 때 더 잘 팔려 '불황형 자동차'로 불린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택배·운반 등을 위해 구매하는 생계형 차량이다 보니 실업자나 자영업자가 늘어나는 불황기에 판매량이 많다. IMF 외환 위기 여파로 경기가 위축됐던 1999년에도 포터와 봉고 판매량은 전년 대비 각각 61.4%, 27.1% 늘어났다. 포터가 많이 팔릴수록 경기가 안 좋아 '포터 지수'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다.

기아자동차 광주 3공장에서 한 직원이 조립된 봉고 트럭을 살펴보고 있다. 3공장은 봉고 트럭만을 전량 생산하는 곳이다. 기아차는 최근 코로나발(發) 경제 위기로 내수와 수출이 모두 줄자 7월 8~10일, 29~31일 등 총 6일간 봉고 트럭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는 포터 지수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포터와 봉고마저 판매 부진을 겪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에 따르면, 올해 1~5월 포터와 봉고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2.5%, 2.4% 줄었다. 봉고 트럭을 전량 생산하는 기아차 광주 3공장은 판매량 감소로 7월 엿새간 생산을 중단할 계획이다. 자동차 업계에선 "코로나발(發) 경제 불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사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경기 침체 바로미터 상용차 시장

트럭 등 상용차 시장은 코로나 사태의 직격탄을 맞았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이전 불황 때와 달리 자영업자·소상공인·실업자 등이 생계를 위해 트럭을 구매할 여력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승용차의 경우 정부의 개별소비세 인하 정책으로 판매가 다소 늘었지만 개별소비세 인하 대상에서 빠진 상용차는 정부의 내수 진작책 효과도 누릴 수 없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5월 국산 승용차 내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8% 늘어났다. 반면, 같은 기간 상용차 내수 판매량은 14.7% 줄었다. 특히 '서민의 발'로 여겨지던 경형 상용차들의 판매량 감소가 심각하다. 한국GM의 다마스(밴)와 라보(미니 트럭)의 1~5월 내수 판매량은 각각 719대, 1215대로, 작년 동기 대비 28.4%, 23% 감소했다.

◇건설경기 침체로 대형 트럭 판매 저조

소형 트럭뿐 아니라 덤프트럭이나 카고트럭 같은 대형 화물트럭의 판매도 줄고 있다. 건설 경기 침체 때문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대형 트럭 중심인 수입 상용차 시장의 1~5월 판매량(버스 제외)은 1777대로 전년 동기 대비 19.3% 감소했다. 수입 상용차 업계 1위인 볼보트럭 관계자는 "건설 현장이 사라지고 공사 자재를 실어나르던 차들이 줄면서 대형 화물트럭 구매 수요 역시 줄어드는 상황"이라며 "일감이 떨어져 개인 화물운송사업자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 6월 나온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월간건설경기동향에 따르면 지난 4월 국내 건설수주는 전년 동월 대비 31.3% 감소한 9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매달 10% 이상 증가세를 보였지만,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3월 13.1% 줄어든 데 이어 2개월 연속 감소했다.

◇버스 제조 업체도 휘청

버스 제조업계도 사회적 거리 두기 여파로 휘청거리고 있다. 지역 이동과 관광이 줄어들면서 대표 상품이던 대형 버스가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기아자동차의 경우 내수 주문 감소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산업단지에 있는 대형 버스 생산공장의 7월 가동 일수를 6일 축소 운영한다. 현대·기아차와 함께 국내 버스 제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자일대우버스의 경우 지난 22일부터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고 30일엔 7~8월 두 달간 생산 공장 휴업을 결정한 상태다. 지난 3월 말 모기업인 영안모자의 백성학 회장이 연말까지 울산공장을 폐쇄하고 베트남 생산 공장에 주력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한 후속 조치다.

자일대우버스는 2018년부터 2년 연속 적자를 본 상태에서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자 생산량이 급감했다. 올해 4월까지만 해도 매달 100대 이상의 버스를 생산했지만 5월에는 71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 감소했다. 6월 생산량은 12대(29일 기준)에 불과하다. 자일대우버스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 두기 여파로 관광버스 등 버스 수요가 많이 줄어든 상황"이라며 "7~8월 발주량은 당초 예상했던 것의 10~20% 수준에 불과해 공장을 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4월 30일 발표한 노후버스 운행 연한 1년 연장 정책도 버스 제조 업체에는 악재였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이용객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버스 운행 업체를 위해 7월부터 연말까지 교체 대상인 노후 버스를 1년 더 운행할 수 있게 해주면서 버스 구매 수요가 더 떨어졌다.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상용차 시장의 침체는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버스나 소형 트럭 같은 상용차 시장은 국민 생활 경제와 접점이 크기 때문에 소비가 활성화되지 않는 한 계속 침체할 것"이라며 "언제 침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을지 예상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