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0나노미터의 붉은색 장파장 빛을 비추는 LED 손전등. 하루 3분씩 2주간 이 빛을 눈에 비추면 40세 이상에서 시력이 크게 향상되는 결과를 얻었다.

노안(老眼)은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40세만 넘으면 누구나 시력이 떨어진다. 인체의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됐다. 가전제품의 배터리를 충전하듯 빛으로 눈에 에너지를 추가해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글렌 제프리 교수 연구진은 지난 28일 국제 학술지 ‘노인학 저널’에 “하루에 3분씩 붉은색 장파장 빛을 눈에 비춰 시력이 향상되는 것을 인체 실험으로 처음 확인했다”고 밝혔다.

◇망막세포의 색 구분능력 20%까지 향상

인간은 40세 전후로 망막(網膜)이 노화되면서 시력이 떨어진다. 망막의 빛 민감도와 색 구별 능력이 모두 40세 이후 떨어진다. 망막 세포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미토콘드리아의 능력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미토콘드리아는 망막의 광수용체 세포에서 가장 밀도가 높다.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생산이 나이가 들면서 70%까지 줄어든다. 이로 인해 망막이 다른 장기보다 더 빨리 늙는다.

제프리 교수는 “미토콘드리아는 650~1000나노미터의 장파장 빛을 더 많이 흡수해 에너지 생산력을 높인다”며 “시력 저하를 막거나 되돌리기 위해 망막의 나이 든 세포를 장파장 빛으로 재부팅 하려고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앞서 생쥐와 벌, 초파리 실험에서 눈에 670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의 붉은색 파장의 빛을 비추면 망막의 광수용체 기능이 크게 향상되는 것을 확인했다.

망막의 광수용체 세포의 전자현미경 사진. 원뿔 모양이 색을 구분하는 원추세포(보라색)이고 기둥 모양이 명암을 구분하는 간상세포(녹색)이다.

망막의 광수용체는 원뿔 모양의 원추세포와 막대 모양의 간상세포로 구성된다. 원추세포는 색을 감지하고 간상세포는 명암을 구별한다. 연구진은 28~72세 남녀 각각 12명씩 24명에게 붉은색 파장의 빛이 나오는 LED(발광다이오드) 손전등을 주고, 하루에 3분씩 2주 동안 눈에 비추도록 했다.

실험 결과 670나노미터 파장의 붉은색 빛은 젊은 사람들에게는 별 영향을 주지 않았다. 반면 40세 이상은 눈에 띄게 시력이 향상됐다. 원추세포가 색을 구분하는 능력은 40세 이상에서 20%까지 증가했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먼저 손상되는 파란색 구분 능력이 크게 향상됐다.

간상세포의 명암 구분 능력도 색 구분 능력만큼은 아니지만 40세 이상에서 상당히 향상됐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눈의 에너지 시스템 재충전하는 기술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늘면서 시력 저하로 고통받는 사람도 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가 빨라 더 큰 문제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가 768만5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4.9%를 차지한다. 노인 인구 비율이 전 세계 201개국 가운데 52위이다. 하지만 26년 뒤인 2045년엔 37%까지 늘어나, 현 세계 최고령 국가인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 고령국가가 될 것으로 예측됐다.

제프리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는 나이가 들면서 약해진 시력을 눈에 빛을 비추는 간단한 방법으로 상당 부분 개선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빛이 망막세포에서 퇴화한 에너지 시스템을 마치 배터리를 충전하듯 되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기술은 간단하면서도 안전하다”며 “특히 붉은색 파장을 비추는 LED 손전등 가격이 12파운드(한화 1만8000원)여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결과가 앞으로 눈의 노화를 개선하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을 주겠지만, 의료계의 검증을 받기 전에 개인적으로 이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