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5일 조수가 그린 그림에 가필(加筆)해 자기 이름으로 판매한 혐의(사기)로 재판에 넘겨진 가수 겸 화가 조영남(75)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5일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조영남씨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택에서 자신의 그림을 들어 보이고 있다. 조씨는 "화투 그림은 잘 팔리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릴 것"이라고 했다.

조씨는 2011년 9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송모(63)씨 등 화가 2명을 고용해 화투 그림 26점을 그리고, 자기 작품이라고 속인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1심은 "송씨 등은 조수가 아니라 창작에 참여한 작가이기 때문에 해당 작품을 온전히 조씨의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조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미술 작품은 화투를 꽃으로 표현하는 조씨의 아이디어가 핵심이며, 송씨 등은 보조자에 불과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2심 판단을 받아들이며 "조수의 도움을 받는 미술계 관행을 법적 처벌 대상으로 다루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이날 선고 직후 서울 청담동 자택에서 만난 조씨는 "제가 사기꾼으로 인식되는 게 너무나 억울해서 저도 모르게 한(恨)이 쌓였다"며 "그래도 그간 제가 사회에서 받은 게 컸으니 그걸로 퉁 쳤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 법이 나를 화가로 만들었다"며 "별 볼일 없던 그림 그리는 가수한테 '너 그림 제대로 그리라'고 본격적인 사명감을 줬다"고도 했다. "조영남은 화가가 아니다"라는 일부의 비판에 대해서는 "미술에 얽매여야 할 규칙 같은 건 없으며, 그게 미술의 매력"이라고 주장했다.

조씨는 승소와 함께 책도 내고 전시회도 할 예정이다. 4년 전부터 준비해온 저서인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현대미술에 관한 조영남의 자포자기 100문 100답'이 이날부터 예약 판매에 들어갔다. 시중에는 내달 초 발매된다.

이날 판결에 대해 미술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미학자인 진중권씨는 이날 페이스북에 “몇몇 사람 빼고 수많은 전문가가 엉뚱하게 검찰 편을 들어줬는데, 대한민국 전문가 집단의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었다”라고 했다. 반면 전영백 홍익대 미대 교수는 “이번 판결로 인해 현대미술이 아무나 큰 노력 없이도 유명해질 수 있는 비전문의 영역으로 비칠까 우려스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