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쏟아지는 폭격을 피해 엄마는 국경 마을 할머니 집에 어린 아들 쌍둥이를 맡겼다. 씻은 적도 없고 옷을 벗은 적도 없는, 온통 주름과 털 난 사마귀투성이인 할머니. 마을에선 할머니를 '마녀'라 부르고 할머니는 손자들을 '개자식'이라 부른다. "구두는 벗어. 지붕 아래서 자고 굶어 죽지 않으려면 일을 해!" 거리엔 어디론가 끌려 가는 유대인 행렬, 술집에는 팔다리 잘린 군인들이 술에 취해 노래한다. 어른들이 만들어낸 전쟁의 지옥도 속, 쌍둥이는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엄마는 돌아올까. 쌍둥이는 이 지옥을 벗어날 수 있을까.

전쟁 중인 나라, 할머니 집에 맡겨진 어린 쌍둥이(문숙경·이수현)는 처음으로 닭을 훔쳐 목을 치고 털을 뽑으며 살아남기 위해선 죽여야 할 때도 있음을 깨닫는다.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극단 '하땅세'의 연극 '위대한 놀이'(연출 윤시중)는 끊임없이 우습고 또 슬프다. 둘인 듯 한 몸 같은 어린 쌍둥이의 고난을 소극장에 펼쳐놓기 위해 연극은 무대를 아예 비웠다. 검고 텅 빈 무대는 곡예와 춤의 경계에 있는 배우들의 몸짓,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관객의 상상력으로 채워진다. 배우들은 가늘고 긴 테이프를 무대 위에 붙여 경계선을 긋고 또 지운다. 그 선 안은 가축 소음으로 정신 사나운 할머니집 마당이었다가, 춥고 배고픈 아이들이 갇힌 헛간이 되고, 까마귀가 눈알을 파먹은 군인 시체가 썩어가는 숲속이 된다.

쌍둥이는 이 비현실적 현실을 버티려 아빠의 대사전을 펼쳐가며 일기를 쓰고, 모진 고통과 야멸찬 모욕을 견디려 스스로의 힘으로 단련한다. 그중 가장 힘든 건 엄마의 기억에 무감각해지는 연습이다. "내 사랑, 금쪽같은 내 새끼들, 엄마가 많이 사랑해." 따뜻한 엄마 목소리를 떠올리고도 울지 않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관객은 쌍둥이가 생존법을 터득해가고, 똑똑한 척 허점투성이인 어른들을 골려 먹을 때 함께 깔깔대며 웃다가, 이내 그들이 갇힌 비극에 몸서리친다.

밀란 쿤데라와 비견된다는 헝가리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원작. 소설은 '친절하다'고 하는 대신 '그는 내게 이불을 주었다'고 쓰는 방식으로 감정을 나타내는 언어의 모호함을 피하려 했다. 연극 역시 무표정한 배우들의 행위와 관찰을 통해 쌍둥이가 겪는 학대, 분노, 사랑, 증오의 순간들을 관객의 머릿속에 고스란히 재현한다. 머리로부터 손끝, 발끝까지 전해지는 웃음과 고통의 감각을 통해 무대 위 천국과 지옥이 흘러넘치듯 객석으로 번진다. 경이로운 연극 형식의 성취다.

2017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대상 수상작. 15세 이상 관람가. 공연은 2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