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바 미 법무부 장관

미 하원은 2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들에 대해 구형량(求刑量)을 낮추고, 공소 진행을 포기하는 결정을 한 윌리엄 바 법무장관을 7월말 법사위 청문회에 소환하기로 했다. 제럴드 내들러 미 하원 법사위원장(민주)은 이날 “바 장관은 대통령 친구들과, 나머지 우리에겐 다른 규칙이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그는 대통령의 해결사(fixer)”라고 비난했다.

바 장관의 법무부는 지난 2월 연방 검사들이 의회 위증(僞證)·증인 회유 등 7개 혐의로 기소된 트럼프 측근인 정치 컨설턴트 로저 스톤에 대해 7~9년을 구형하자, “나이와 건강을 고려할 때에 과도하다”며 3~4년으로 구형량을 낮췄다. 이로 인해 검사 4명이 사건을 사임했고, 1명은 검사직을 떠났다. 법무부는 또 트럼프의 첫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마이클 플린의 러시아 접촉 관련 위증 혐의에 대해서도 플린이 이미 두 차례 유죄를 인정했는데도, 지난달 7일 공소를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바는 또 트럼프의 옛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과 측근 루돌프 줄리아니를 강도 높게 조사하는 제프리 버먼 뉴욕 남부 연방검사장의 해임을 건의했고, 트럼프는 지난 19일 버먼을 전격 해임했다. 이뿐 아니다. 작년 2월 법무장관이 된 바는 취임 직후 곧바로 2016년 트럼프 대선 캠프와 러시아 간 커넥션을 수사한 뮬러 특검의 보고서를 왜곡한 요약 발표문을 내며 트럼프에게 면죄부를 주는 등 그간 트럼프가 맞는 고비마다 ‘충복’ 노릇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미 연방검사들의 총수(Attorney General)이기도 한 그의 이러한 행보는 법 집행에서 철저히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온 미 법무부와 연방검찰의 전통적인 독립성을 크게 무너뜨린 것이 사실이다.

윌리엄 바 미국 법무부 장관

바는 이미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법무장관(1991.11~1993.1)을 지냈고, 변호사와 기업 법률고문으로도 성공해 최대 7400만 달러(포브스 추정·약 893억원)의 부(富)를 일군 인물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많은 이는 “이미 경력의 정점(頂點)을 찍은 이가 나이 70세에 왜 트럼프의 정치적 도구가 됐느냐”고 의아해한다.

그러나 미 주간지 뉴요커는 “바를 아는 이들은 둘의 관계는 그 반대로, 바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원칙을 실현하려고 트럼프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보수적인 가톨릭 신자인 바가 제일 우려하는 것은 미 대통령 권한의 축소와 미국 사회의 ‘도덕적 타락’이다. 바는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미 대통령의 권한이 지나치게 약해졌고 의회의 견제가 심해졌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권한을 다룬 미 헌법 2조는 대통령에게 행정부에 대한 무제한적 통제권을 부여한다고 믿는다. 그는 대통령 권한을 다시 확대해간 레이건 시절에 백악관 법률팀에 합류했고, 에드윈 미즈 당시 법무장관의 추종자가 됐다. 미즈는 “미 대통령은 더 많은 법안을 거부해야 하고, 행정부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위헌적 법률은 집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권고안을 낸 사람이다. 이들에게 “독립적인 특검은 행정부 권한을 약화시키려는 야당의 정치적 무기”에 불과했다.

그는 또 1960년대 이후 좌파가 미국의 뿌리인 종교(기독교)를 집중 공격해 사회가 도덕적으로 훼손되고 각종 사회문제가 범람하게 됐으며, 이제 ‘도덕적 부흥’을 시작할 때라고 믿는다. 그는 직년 10월 노트르담대 로스쿨 연설에서 “세속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이 언론과 대중문화, 영화계, 학계를 총동원해 미국에서 종교와 전통적 가치를 조직적으로 파괴했다”고 말했다.

윌리엄 바 미국 법무부 장관

트럼프는 ‘종교의 역할’을 바처럼 신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도 작년 10월 “정부 안팎의 극단적 좌파 세력이 헌법을 찢고 아이들을 세뇌하며 소중한 가치를 제거하려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실제로 취임 후 보수 성향의 연방 대법원 판사 2명과 연방 판사 146명을 임명했다. 바는 이런 트럼프를 보호하는 창(槍)과 방패가 됐다. 뉴요커는 “트럼프를 대통령직에서 몰아내려는 공세가 클수록, 둘의 정치적 이해관계는 더욱 합쳐졌다”고 전했다. 바는 동성애자의 군 복무에 반대했고, 주 정부의 ‘코로나바이러스 봉쇄’ 정책을 무효화하는 대통령 권한과 약탈·방화 현장에 군을 동원하는 것을 지지했다. 1992년 로스엔젤레스 폭동 때 소요진압법에 근거해 연방군 투입을 권고한 것도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바였다.

작년 1월 법무장관 인준에 나선 상원의 민주당 의원들은 바의 이런 소신을 몰랐고, 그저 법무장관을 지낸 그가 트럼프의 무법적 처사를 제어하는 ‘현자(賢者)’노릇을 할 것이라고 착각했다. 아버지 부시 행정부 때 바와 함께 일했던 스튜어트 거슨 전 법무장관 대행은 “그는 트럼프보다 훨씬 똑똑하며, 트럼프는 바에게 그림을 그릴 캔버스를 준 것”이라며 “바는 사회는 어떻게 조직돼야 하는지에 대한 오랜 신념을 이제 구현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