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구내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여 건조물 침입 혐의로 기소된 시민에게 법원이 23일 유죄(벌금 50만원)를 선고했다. 일반인도 수시로 드나드는 대학 캠퍼스에 들어간 행위를 건조물침입죄로 다룬 사례는 찾기 어렵다. 법조계에서는 "정부 비판 대자보를 붙인 것에 무단침입 혐의를 덧씌운 기소에, 법원이 독재 정권에도 없었던 판단을 내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타 지역 대학 졸업생인 김모씨는 지난해 11월 단국대 천안캠퍼스 학생회관과 체육관 등 5곳에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얼굴이 인쇄된 대자보에는 "나(시진핑)의 충견 문재앙이 공수처, 연동형비례대표제를 통과시켜 완벽한 중국 식민지가 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칠 것"이란 내용이 적혀 있었다. 김씨는 과거 학생운동 단체의 이름을 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신 전대협)'에서 정부 비판 활동을 해왔다.

경찰은 김씨를 건조물 침입 혐의로 조사했고 검찰은 이를 받아들여 김씨를 벌금 100만원에 약식 기소했다. 이에 김씨는 무죄를 주장하면서 정식 재판을 청구했지만 이날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3단독 홍성욱 판사는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건조물침입죄는 건물 관리자의 의사에 반(反)해 건물에 들어가야 죄가 된다. 경찰은 당초 "대학 당국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21일 재판 증인으로 나온 단국대 천안캠퍼스 관계자는 "신고한 적이 없으며 '유사 사례가 있으면 알려 달라'는 경찰 부탁에 따라 업무 협조 차원에서 알려준 것뿐"이라고 증언했다. 이 대학 관계자는 "대자보로 피해를 본 것도 없고 김씨 처벌을 원치 않으며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재판까지 갈 문제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법원의 유죄 선고 근거는 '대자보를 붙이려면 학교 당국의 허락을 맡아야 한다'는 대학 내부 지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자보 부착 허가를 받지 않았으니 대학 출입도 불법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표현의 자유'라는 김씨 주장을 감안해 벌금을 절반으로 깎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에 대해 한 법조인은 "대학 대자보는 언로(言路)가 막힌 권위주의 시대에 거의 유일한 의사 표현의 수단이었다"며 "대학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어도 그 행위만으로 처벌한 적은 없었던 걸로 안다"고 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지금은 사라진 '국가원수 모독죄'가 다른 형태로 부활한 것 같다"고 했다.

김씨 측 변호인인 이동찬 변호사도 재판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현 정권 주축인 운동권 출신들이 과거 대자보를 붙인 것은 표현의 자유, 민주화 운동이고 김씨의 대자보는 건조물침입죄인지 묻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2017년 대선 후보 시절 방송에 출연해 "국민은 얼마든지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다"고 한 발언 내용도 참고 자료로 첨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