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 대사는 23일 "영국 참전 용사들은 70년 전 6·25 전쟁이라는 악몽 속에 있던 어린 한국 아이들을 봤다"며 "이제 시간이 흘러 한국의 젊은이들을 보면 그들이 악몽에서 빠져나왔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스미스 대사는 이날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영국 대사관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바로 손흥민과 같은 젊은이들이 그런 감동을 주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스미스 대사는 "누군가는 6·25 전쟁을 '잊힌 전쟁'이라고 하지만 영국인들의 뇌리엔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히 박혀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70주년을 맞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한국 정부에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고 했다. 영국은 6·25 전쟁에 5만6000여명이 참전했다. 이 중 전사자만 1000여명, 부상자 2600여명, 포로로 잡힌 사람이 970여명이었다.

사이먼 스미스 주한 영국 대사가 23일 서울 중구의 주한 영국 대사관에서 본지와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인터뷰하고 있다.

―다른 참전국도 많지만, 영국이 유난히 6·25 전쟁 70주년을 뜻깊게 생각하는 것 같다.

"영국군의 6·25 참전은 항상 영국인들의 뇌리에 박혀 있었다. 누군가는 '잊힌 전쟁'이라고 하지만 내 기억으로 영국에서는 잊힌 전쟁이 아니었다. 세계대전 직후 파병을 한다는 건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결정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계 평화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침입이었기 때문이다. 참전은 충분한 헌신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나서서 70주년 메시지를 보내겠다고 한 것이다."

―여왕의 메시지는 어떤 의미를 갖나.

"아주 간명하고 솔직하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여왕은 6·25 전쟁이 시작됐을 때 24세였다. 여왕만이 가진 당시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여왕은 메시지를 자주 내지 않는다.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특별한 메시지다."

―영국군 참전 용사들에게 6·25는 어떤 기억이었나.

"그들 중 일부는 참전 당시 고작 18, 19세였다. 내가 만난 참전 용사들은 6·25 전쟁 당시의 기억을 생생히 갖고 있었다. 특히 참전 용사들은 한국에 다시 초대됐을 때 변화한 한국의 모습을 보고 아주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젊음을 바쳐 지킨 나라이기 때문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6·25 전쟁 직후 한국을 두고 '쓰레기통에서 꽃이 필 수 없다'고 했다.

"수십 년이 지나 한국에 오는 영국 참전 용사들은 '와우, 한국은 정말 놀라운 나라다'라고 말한다. 90세가 넘은 노병들이 '우리가 한 일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이었구나'라고 한다. '한국에 와보라, 자유를 지키는 것이 이렇게 가치 있는 일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정말 대단한 한국 사람들을 만났고, 한국의 훌륭한 발전을 보고 있다."

―영국 참전 용사 중엔 다시 전쟁이 나면 한국에서 싸울 것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에 대한 애착이 정말 강하신 분들이다. 많은 분이 아주 젊었을 때 한국에 왔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한국 정부와 사람들로부터 정말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참전 용사들의 감수성을 가장 자극하는 순간은 한국의 젊은이들을 만났을 때다. 70년 전 6·25 전쟁 때 본 아이들은 악몽과 같은 시간을 겪고 있었다. 참전 용사들은 한국의 젊은이들을 보며 한국이 전쟁의 악몽에서 빠져나와 점점 더 좋아지는 것을 체감했다. 손흥민을 봐라. 손흥민은 축구를 기술적으로 잘할 뿐만 아니라 축구를 즐기는 태도도 갖고 있다. 한국의 이미지를 환상적으로 만들어주는 선수이며 최고의 외교관이다. 그의 경기를 보면 (억지로 무언가를 하려는 게 아니라)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손흥민과 같은 선수를 통해 6·25 70주년의 의미를 젊은이들에게 더욱 크게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참전 용사들이 나이가 들며 점점 줄어들고 있다.

"모든 국가가 가진 고민이다. 내가 소년일 때 많은 1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가 있었다. 이젠 그 전쟁은 102년 전 일이 됐다. 지금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지만, 젊은이들에겐 이들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기억을 계속 살아남게 하는 건 더 큰 도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억은 죽지 않는다."

―70년이 지났지만 한반도엔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

"북한을 대하는 유일한 해결책은 인내심을 갖는 것이다. 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영국은 일관된 메시지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이를 유지하려고 했다. 첫째, 북한이 국제사회의 규범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 둘째, 이 모든 게 북한의 선택에 달렸다는 걸 잘 각인시켜야 한다. 북한이 협력의 뜻을 밝힌다면 국제사회는 무엇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기꺼이 따져볼 용의가 있다. 그리고 그 선택에 앞서 비핵화가 있어야 한다."

공동 기획 :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