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는 이들의 자리를 뺏도록 해주는 게 평등입니까?'

23일 오전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 국민청원 코너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0)' 정책에 맞춰, 인천국제공항공사가 협력 업체 소속 보안검색 요원 1900명을 공사의 직고용 형태로 정규직 전환한다고 발표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이날 오후 11시까지 11만8000명이 청원에 서명했다. '가뜩이나 부족한 양질(良質)의 일자리를 별다른 노력 없이도 가져갈 수 있도록 해준 게 공정하냐'는 문제 제기였다.

인천공항은 청년층 사이에서 '꿈의 직장'으로 통한다. 인크루트가 이달 초 조사한 '가장 일하고 싶은 공기업' 순위에서 인천공항공사는 18.4%의 득표율로 1위였다. 신입사원 연봉도 4589만원으로 공기업 가운데 가장 많다. 작년 상·하반기 합산 35명을 뽑는 신입 직원 공채에 5469명이 지원, 경쟁률 156대1이었다. 연세대 졸업생 A(27)씨는 작년 5월 인천공항공사 인턴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학점은 3점대 후반, 토익 점수는 900점대 중반에 자격증이 2개였지만, 서류 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그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 필요하단 의견에 공감하지만, 이런 식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불공정'에 대한 분노는 각 대학 커뮤니티, 취업 정보 카페 등 20~30대가 즐겨 찾는 인터넷 공간에서 특히 더 크게 터져나왔다. 이들은 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 요원 직고용 발표를 '인국공 사태'라고 불렀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무기력하다" "노력한 자들이 오히려 차별받는 거지 같은 상황" 등의 글을 남겼다. "공부하지 마세요. 떼 쓰면 됩니다"(네이버 기사 댓글) "이것이 K직고용"(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같은 글도 올라왔다. 'K직고용'은 문 대통령이 코로나 방역 성과를 자랑하며 썼던 'K방역'에 빗댄 표현이다. 문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인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는 조롱의 대상이 됐다.

특히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직원들 간 채팅으로 추정되는 카카오톡 대화 캡처가 인터넷에 퍼지면서 분노를 부채질했다. 이 대화의 한 참여자가 '22세에 알바천국 통해 보안요원으로 들어와서 이번에 정규직 전환이 된다' '서·연·고(서울·연세·고려대) 나와서 뭐 하냐. 너희 5년 이상 버릴 때 나는 돈 벌면서 정규직'이라고 적었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일련의 평등 추구 정책을 '노력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날 오후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서 만난 공기업 취업 준비생들은 "정부의 '공공 부문 비정규직 제로' 방침은 공부하고 노력하는 이들에 대한 역(逆)차별"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영어 교사인 박모(여·29)씨는 "2년 넘게 임용고시 준비해서 겨우 합격했는데, 재작년에 기간제 교사들을 한 번에 정규직으로 전환해 준다는 정부 검토안을 듣고 '내가 왜 2년을 고생했나'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대학가도 들끓었다. 대학별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엘리트의 밥그릇을 빼앗아 이득을 다수에게 나눠준 뒤 대중의 지지를 얻는 게 정부의 전략(연세대)" "단순 노동 인력과 대졸 공채 사무직이 같은 수준의 대우를 받는 게 어떻게 '평등'일 수가 있느냐(서울대)" 등의 글이 올라왔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의 인터넷 카페 '공취사' 회원들은 '기회는 공정할 거라더니 엽관제(선거에 이긴 정당 출신들이 공직을 독차지하는 제도) 국가를 만들어 버렸다' '공채는 관심도 없으면서 노량진 와서 컵밥은 왜 드셨느냐'는 글을 올렸다. 문 대통령이 2012년 9월 노량진에서 고시생들이 즐겨 먹는 '컵밥'을 먹은 사진도 인터넷에서 회자됐다.

불공정에 대한 분노는 '노력을 통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없애나가는 문 정부의 정책 전반으로 확산 중이다. 또 다른 대표적 타깃이 대출을 틀어막아 거액 현금 보유자가 아니면 집을 사지 못하도록 만든 부동산 정책이었다. 이용자 101만명의 네이버 카페 '부동산스터디'에는 이날 '개천에서 용 될 생각 말고 붕어·개구리·가재로 살도록 하는 (부동산) 정책'이란 글이 올라왔다. 조국 전 법무 장관이 과거 자기 자녀를 편법으로 진학시키는 동안에도 트위터엔 "중요한 것은 용이 되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적었던 것을 비꼰 것이었다. 이날 서울대 커뮤니티엔 "집에 돈은 많고 공부는 안 했던 사람이 제일 살기 좋은 나라가 됐다"는 글이 올라왔다.

최항섭 국민대 교수는 "현 정부가 구호로 내걸고 추구해온 '평등' '공정'이 현실에서는 기성세대를 위해 청년층의 희생을 요구하는 방향, 또는 계층 이동 사다리를 걷어차는 방향으로 정책에 반영되면서 청년층이 반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