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지난 15일(현지 시각)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아킬리인터랙티브랩의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 치료제를 승인했다. 이 회사의 신약은 약물이 아닌 '인데버알엑스(EndeavorRx)'란 이름의 게임이었다. 게임이 치료제로 당국의 허가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 의사는 8~12세 사이의 ADHD 어린이를 대상으로 약물 대신 이 게임을 처방할 수 있다. 아이패드나 아이폰에서 내려받을 수 있는 인데버알엑스는 캐릭터를 조종해 장애물을 피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게임이다. 회사는 "게임은 인지 기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뇌의 전두엽 피질을 활성화해 주의력을 향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어린이가 태블릿PC로 아킬리인터랙티브랩이 개발한 ADHD 치료 게임을 하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최근 이 게임을 치료제로 승인, 앞으로 의사들은 ADHD 어린이를 대상으로 게임을 처방할 수 있다.

디지털 치료제가 새로운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먹는 알약이나 주사제 대신 앱(응용프로그램), 게임, VR(가상현실) 같은 소프트웨어 기반의 치료법이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대면(對面) 진료가 어려워지면서 디지털 치료제 개발은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직접 진료나 약물을 처방하는 전통적인 치료를 디지털 치료제가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 있다"며 "코로나는 디지털 치료제 혁명을 가속할 것"이라고 했다.

◇앱으로 약물 중독 치료

2017년 9월 미국 FDA가 디지털 치료제를 처음으로 허가한 이후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관련 연구·개발이 활발하다. 디지털 헬스 기업 페어세러퓨틱스의 중독 치료용앱 '리셋(reSET)'이 최초로 허가받은 디지털 치료제다. 치료법은 간단하다. 알코올이나 약물중독 환자에게 의사가 앱을 처방한다. 환자는 앱을 내려받아 약물 사용 여부 등을 입력하고 앱을 통해 충동을 조절하는 법 등을 익힌다. 임상시험에서 리셋을 사용한 환자군에서 금욕을 유지한 비율이 40.3%로, 앱을 사용하지 않은 환자(17.6%)보다 높았다. 페어세러퓨틱스는 비슷한 치료 방식으로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 중독을 치료하는 앱 '리셋오(reSET-O)'와 불면증 치료앱 '솜리스트(Somryst)'도 개발해 FDA의 허가를 받았다.

개발 분야도 중독 치료뿐 아니라 여러 질병으로 확장되고 있다. 일본 오츠카제약과 미국 스타트업 프로테우스디지털헬스는 공동으로 '아빌리파이 마이사이트'란 디지털 약을 개발했다. 이 약은 조현병 치료용 알약에 센서를 넣은 형태이다. 환자가 약을 복용하면 센서가 위산에 반응해 가슴에 붙인 웨어러블 패치에 신호를 보낸다. 마그네슘 등으로 만들어진 센서는 신호를 보낸 뒤 몸속에서 소화돼 없어진다. 패치와 연결된 스마트폰 앱에 복용 날짜와 시간이 기록된다. 정신질환자가 약을 제때 정량 복용하도록 유도해 치료 효과를 높여준다. 그 밖에 만성질환인 당뇨나 비만 예방·치료에 디지털 치료제가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도 디지털 치료제 개발이 한창이다. 뉴냅스는 시각 장애 치료 프로그램 '뉴냅비전'을 개발했다. 뉴냅비전은 눈이나 시신경은 문제가 없지만 뇌의 시각을 담당하는 부분을 다친 사람들을 위한 치료법이다. VR 기기로 새로운 자극을 반복해 뇌의 다른 부분에서 시각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발달시킨다. 지난해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 허가를 받고 환자를 모집 중이다. 웰트의 앱 '어게인'은 근감소증 환자의 평소 관리 상태를 파악하고 개인 맞춤형 운동을 제안한다. 약이 따로 없어 운동과 식이조절에 의존하는 근감소증 환자들을 위한 앱이다. 또 하이는 카톡 채팅을 통해 계산, 언어, 집중력을 훈련하는 치매 예방 챗봇 '새미'를 개발했다. 라이프시맨틱스는 만성 호흡기질환자의 재활운동을 돕는 소프트웨어 '레드필 숨튼'을 내놨다.

◇코로나 사태로 성장 가속

디지털 치료제 산업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관련 시장은 급성장세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올해 21억달러(약 2조5000억원)인 세계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매년 27% 성장해 2025년에는 69억달러(8조30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디지털 치료제가 기존 신약 개발에 비해 유리한 점이 많아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보통 신약 하나를 개발하려면 평균 1조원의 연구·개발 비용이 든다. 허가받기 위해선 전 임상시험(동물시험)부터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1~3상 시험 모두 거쳐야 한다. 단계마다 실패 확률이 높고 제품이 시장에 나오기까지 10년 넘게 걸리기도 한다.

반면 디지털 치료제는 개발 비용이 신약 개발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전 임상시험이 필요 없고 임상시험 기간도 통상 1~2년으로 짧다. 최근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 기술 발달도 디지털 치료제 급성장의 요인으로 분석된다.

특히 이번 코로나 사태로 성장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 FDA는 지난 4월 디지털 치료제 관련 규제를 일시적으로 완화했다. 당국의 승인 전이라도 일부 정신 질환 치료용 소프트웨어를 출시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다.

전 세계 30여 개발사를 회원으로 둔 디지털치료제연합은 "코로나 사태로 만성질환자가 병원에 가기 어렵고 정신질환자는 사회적 격리 생활로 스트레스가 커지고 있다"며 "새로운 종류의 약(디지털 치료제)을 사용해 코로나로 직면한 도전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디지털 치료제(Digital therapeutics)

먹는 알약이나 주사 대신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는 방법을 말한다. 주로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이나 게임, VR(가상현실), 챗봇 등을 활용한다. 기존 신약보다 개발 시간이 짧고 개발 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