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군 석적읍 주민 최삼자(73) 할머니는 얼마 전 태어나 처음으로 영문 편지를 썼다. 수신인은 에티오피아의 6·25 참전 생존 용사 138명이다. 할머니는 칠곡군에서 에티오피아에 보낼 마스크를 모은다는 소식을 듣고 우선 마스크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이웃 주민과 함께 필터 교체형 300장을 만들던 중 "사용법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티오피아 공용어는 암하라어와 영어. 그나마 알파벳이라도 배워본 영어로 보내기로 했다. "내가 꼬부랑글자로 편지를 쓸 수가 있나, 미국에서 교수 하는 며느리한테 한글로 내용 보내서 영어로 번역을 받았지." 최 할머니는 번역본을 보면서 알파벳 한 자씩 그려가며 138통을 완성했다. 최 할머니는 18일 "다 쓰고 나니 팔과 허리가 욱신거려 파스를 붙였다"면서 "잊히면 안 될 분들을 위해 생긴 훈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호국의 고장' 경북 칠곡에서 6·25전쟁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용사와 유가족을 위해 모은 마스크가 3만장을 넘어섰다. 함께 보내온 손편지는 700통이나 된다. 칠곡군은 6·25 70주년을 맞아 지난 4월부터 '6037을 아십니까' 운동을 시작했다. '6037'은 6·25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용사 6037명을 기리는 숫자다.

에티오피아 참전군은 당시 강원도 화천군, 김화군, 문등리 등에서 253차례 전투에 참전해 모두 승리했다. 전사자 122명, 부상자 536명 등 사상자 총 658명이 발생했다. 6·25 최대 격전지 중 한 곳인 칠곡은 다부동 일대에서 55일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국군 1만명과 북한군 2만4000명이 전사하거나 다쳤다. 328고지 백병전, 유학산 전투 등 전쟁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칠곡군은 용사를 기리기 위해 지난 2013년부터 매년 10월 '낙동강 세계 평화 문화 대축전'을 연다.

이번에 전국에서 모인 마스크는 어느 한 장 사연 없는 것이 없다. 중증의 뇌병변 장애를 가진 칠곡 주민 장윤혁(45)씨는 휠체어를 타고 마트와 약국을 돌며 365장을 사서 기부했다. 장씨는 "에티오피아 용사들을 365일 기억하겠다는 마음을 담아 365장을 모았다"고 했다.

6·25 참전유공자회 칠곡군지회에서는 138장을 기부했다. 박덕용(86) 지회장은 "70년 전에도 그랬듯, 코로나와의 전쟁에서도 노병은 죽지 않는다"면서 "에티오피아 전우들과 끝까지 싸워나가겠다"고 했다. 참전 용사의 딸도 참가했다. 서울에 사는 배옥광(92) 참전 용사의 딸 배성은(61)씨는 "아버지와 함께 싸워주신 분들을 어찌 잊겠느냐"면서 마스크 30장을 보내왔다.

경기도 용인 한국외국어대학교 부설 고등학교 동아리 '크리에이티브 캠페인(Creative Campaign)' 회원 16명은 마스크 100장과 함께 에티오피아 암하라어로 쓴 편지를 전달했다. 한글로 쓰고 구글 번역기로 변환해 그림 그리듯 썼다. 이지원(17) 학생은 "편지가 참전 용사분들께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수 소향이 마스크 기부 홍보 대사를 맡으면서 해외에서도 연락이 왔다. 앞서 소향은 칠곡의 마스크 운동 기사를 읽고 "힘을 보태고 싶다"고 자청했다. 이어 소향의 팬들도 "후원 방법을 알려달라"며 잇따라 참여 의사를 밝혔다. 칠곡군 관계자는 "캐나다에 산다는 소향 팬도 마스크를 보내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모인 마스크는 19일 백선기 칠곡군수가 서울 용산구 주한에티오피아 대사관을 방문해 손 소독제 250개와 함께 전달할 예정이다. 19일 이후 칠곡군에 도착하는 마스크는 내달에 추가로 전달한다. 백 군수는 "70년 세월을 지나 비로소 참전의 은혜를 작게나마 갚게 됐다"면서 "칠곡군과 함께 마음을 모아주신 국민께 감사드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