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 코드 미디어 디렉터

“그것을 내리지 않으면 많은 사람이 분노하겠지만, 그대로 놔두는 것이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저커버그가 이달 초 2만5000 직원과 진행하는 화상회의에서 한 말이다. 저커버그가 참여하는 직원 회의는 어느 직원이나 CEO에게 거침없이 질문하고 답을 요구할 수 있는 개방적 분위기로 유명하다. 그런 회의를 가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페이스북 직원들이 저커버그를 철저하게 믿고 따르는 점이다. 페이스북은 CEO를 중심으로 한 내부 결속이 강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소셜미디어 업계 갈라놓은 트럼프

하지만 그날 회의의 분위기는 달랐다. 많은 직원이 외부에 공개적으로 저커버그를 비난하는 글을 올렸고, 페이스북에서 일하는 것이 창피하다며 소셜에서 자기 직장을 숨기기도 했다. 저커버그가 말한 "그것"은 트럼프가 페이스북에 쓴 문장이다. 그때부터 며칠 전 트럼프가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이 시작된다"는 문구를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렸는데, 트위터의 CEO 잭 도시는 이 문구가 "폭력을 미화한다"는 이유를 들어 감추기 처리를 하고, 좋아요나 공유(리트윗)를 할 수 없게 막은 반면, 페이스북은 문제의 포스트를 내리지도, 감추지도 않고 그대로 두기로 결정했다. 페이스북 직원들은 그 결정에 분노한 것이다.

저커버그는 왜 트위터와 다른 결정을 내렸을까?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이 시작된다"는 문구의 숨은 의미 때문이다. 트위터 경영진은 트럼프가 이 문구를 자신의 백인 지지자들에게 "총을 들고 일어서라"는 신호를 몰래 담은 "도그 휘슬(dog whistle)"로 해석했다. 개만 들을 수 있고 사람 귀에 들리지 않는 소리를 내는 호루라기를 가리키는 이 표현은, 트럼프가 백인 우월주의자들만 알아듣는 표현을 공개적으로 전달한다고 비판할 때 사용된다.

페이스북 경영진의 해석은 달랐다. 이 표현은 1967년 당시 플로리다의 한 경찰서장이 인권 시위대에 폭도가 섞여 있다며 약탈범은 총으로 쏘겠다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트럼프가 "과도한 경찰력"을 사용하겠다는 의도일 수는 있어도 일반인들에게 폭력을 사주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두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서로 다른 결정을 내렸지만, 두 결정 모두 그럴 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더욱 주목하는 것은 두 기업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가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화와 토론을 기업이 중재하게 되었다는 현실이다.

인터넷 댓글 단속하는 법안의 위력

트위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사용자들이 다른 사람의 트윗에 링크한 기사를 읽지도 않고 리트윗할 경우 "이 기사를 트윗하기 전에 한번 읽어보라"는 권유문을 삽입하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에서 정확한 내용도 모르면서 과격한 논쟁만 증폭되는 상황을 고쳐보려는 시도다. 하지만 좋은 대화를 이끌기 위한 시도라고 해도 기업이 알고리즘을 통해 대중의 행동을 유도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이 논쟁은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터넷 초기, 웹사이트를 운영하던 두 회사가 사용자들이 남긴 댓글로 각각 명예훼손 소송에 걸렸는데, 사람들이 남긴 글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 방치했던 회사는 소송에서 이긴 반면, 댓글을 관리하는 데 신경 썼던 회사는 패소한 사건이 있었다. 법원은 전자에는 "서점은 파는 책 내용에 책임이 없다"는 논리를 적용했고, 후자에는 "댓글을 관리했다면 신문사, 출판사 같은 역할을 했다"며 사용자들이 남긴 댓글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판결은 인터넷 기업들에 "사용자들의 글을 관리하면 오히려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역(逆)인센티브를 주었고, 온라인은 외설적 내용이 방치되는 지저분한 공간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미 의회는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온라인 기업에는 사용자가 남긴 글에 법적인 책임을 묻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문제 있는 내용을 단속하라"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훗날 탄생한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바로 이 조항 덕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조항이 없었으면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내용으로 소송에 시달려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기업 인터넷 플랫폼의 사회적 역할

트럼프는 자기 입이나 다름없는 트윗을 단속하는 트위터를 혼내주기 위해 법을 개정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실제로 그 법안이 개정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트럼프와 소셜미디어 CEO들이 힘겨루기를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이 형성되는 방식을 유권자나 의회가 아닌 소셜미디어의 경영진이 대신 결정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흔히 '콘텐트 중재(content moderation)'라고 부르는 작업은 인터넷 기업들이 자신의 플랫폼을 관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인데,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같은 서비스(페이스북)를 사용해 소통한다면 이는 더 이상 그 플랫폼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 문제가 된다. 사기업인 인터넷 플랫폼이 어느덧 사회의 중재자로 변신한 것이다.

물론 기업들은 이런 역할을 부담스러워하지만 이미 소셜미디어는 전 세계 거의 모든 사회에 깊숙이 침투한 상황이기 때문에 원치 않는다고 발을 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국처럼 기업이 당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 나라가 아닌 한 소셜미디어는 여전히 여론에, 더 나아가 정치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소셜미디어는 공기(公器)인가, 아니면 사기업의 서비스인가. 모든 민주주의 국가가 씨름하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