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폰타그로사 주립대학교 연구진은 최근 잘 익은 복숭아를 찾아내는 '전자 코'를 개발했다. 규모가 큰 과수원에서는 토양과 강우량 등 다양한 요인으로 나무마다 과일이 익는 정도가 다를 수 있다. 연구진은 과일 성장 단계별로 방출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양과 종류가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다. 전자 코는 가스 센서로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인식해 복숭아 숙성 정도를 세 단계(숙성 안 됨, 숙성됨, 많이 숙성됨)로 분류한다. 연구진은 "전자 코의 정확도가 98%에 이른다"며 "과수원에 여러 전자 코를 배치해 상용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람의 감각기관인 코와 혀를 모방해 맛과 향을 감지하는 기술들이 잇따라 개발됐다. 과학자들은 단순히 냄새와 맛을 구별하는 것을 넘어 사람보다 훨씬 더 예민한 수준의 전자 코와 혀를 구현하려고 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이대식 박사는 "식품 평가에서부터 마약 탐지, 질병 진단까지 전자 코나 혀 같은 감각기관을 모방한 기술의 활용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폭발물과 폐암까지 감지

항공우주기업 에어버스는 최근 폭발물을 감지할 수 있는 전자 코를 개발해 올해 안으로 공항과 기내에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전자 코가 공항의 탐지견을 대신하는 것이다. 에어버스는 실리콘밸리 소재 바이오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인 코니쿠와 손잡았다. 코니쿠가 개발 중인 해파리 모양의 센서는 살아있는 세포를 이용한다. 세포의 후각 수용체가 공기 중에 어떤 물질이 있는지 파악한다. 에어버스는 "현재까지 개발된 기술로는 공기 중의 화학물질을 10초 안에 판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에어버스는 전자 코가 코로나 바이러스 탐지에도 응용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국내에서는 이미 질병 탐지용 전자 코가 개발됐다. ETRI 이대식 박사 연구진은 날숨을 분석해 폐암을 진단하는 전자 코를 개발했다. X선 촬영으로 방사선에 노출될 걱정 없이 폐암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것이다.

연구진은 폐암 세포가 만드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감지하는 센서를 만들었다. 전자 코는 날숨을 불어넣은 비닐에 탄소 막대기를 넣어 여러 가스 성분을 채집한다. 유기화합물이 달라붙은 정도에 따라 전기 저항이 달라지기 때문에 암 환자와 정상인을 구별할 수 있다. ETRI 연구진은 서울대병원과 공동으로 환자 37명, 정상인 48명의 날숨을 채취해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했다. 이를 진단에 적용한 결과 정확도는 75%였다.

◇와인의 떫은맛도 수치화

전자 혀로 맛을 찾는 연구도 한창이다. IBM은 인공지능(AI)을 적용해 액체의 성분을 판별할 수 있는 '하이퍼테이스트'를 개발 중이다. 하이퍼테이스트는 전기화학 센서로 액체 내 분자 조합에 따라 달라지는 전기신호를 측정한다. AI는 기계 학습을 거쳐 센서가 맛본 액체가 무엇인지 1분 내에 알아낼 수 있다. IBM은 생명과학이나 제약, 의료 산업 등 폭넓은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전자 혀는 떫은맛도 찾아낸다. 사람의 혀는 단맛과 쓴맛·짠맛·신맛·감칠맛 등 5가지 맛을 느낀다. 그에 맞춰 5가지 미각 세포가 있다. 반면 떫은맛은 미각세포가 아니라 일반 감각세포가 느낀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고현협 교수 연구진은 구멍이 많은 고분자 젤을 이용해 떫은맛을 감지하는 '전자 혀'를 개발했다.

떫은맛은 탄닌과 같은 분자가 혀 점막 단백질과 결합하면서 시작된다. 이때 만들어지는 물질이 점막을 자극하면서 떫은맛이 느껴진다. 떫은맛은 결국 맛이라기보다 일종의 촉각인 셈이다. 고 교수팀이 개발한 전자 혀에는 혀 점막 단백질 역할을 하는 뮤신이 들어 있다. 여기에 떫은맛 분자가 결합하면 전자 혀에 있는 염화리튬 이온의 흐름을 바꾼다. 전기를 띤 이온의 흐름이 달라지면 전기신호도 바뀐다. 이를 통해 떫은맛의 정도를 수치로 나타낼 수 있다. 와인의 떫은맛을 감지하는 실험을 한 결과, 전자 혀는 전문 감별사인 소믈리에보다 10배 이상 민감하게 떫은맛을 감지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