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토박이가 1980년대 초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난생처음 서울에 살게 됐다. 식당에 ‘냉면’이라고 쓴 빨간 깃발이 내걸린 걸 보고 ‘저것이 필시 무슨 음식인 모양인데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광주 주재기자 선배는 ‘왜 전라도 사람들은 냉면을 먹지 않느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밭과 들, 강과 바다에서 철 따라 나는 것 먹기도 바쁜데 웬 냉면?” 냉면에 대한 대접은 지역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한국의 양대 냉면이라고 할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흔히 '물냉'과 '비냉'으로 불리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면의 재료다. 평양냉면은 메밀가루, 함흥냉면은 감자전분이 국수의 주 성분이다. 맛도 다르고 식감도 다르다. 그러나 평양냉면은 요리의 반열에 올랐고 함흥냉면은 시장통 비빔냉면과 비슷한 신세다. 고깃집 메뉴판에 비빔냉면을 '함흥냉면'이라고 쓰는 집은 많지만 물냉면을 감히 '평양냉면'이라고 쓰는 집은 없다.

▶평양냉면은 고기 육수에 무와 간장을 넣고 끓여 식힌 뒤 메밀과 전분을 섞어 빚은 국수를 말아 먹는 음식이다. 북한 '조선료리전집' 조리법에는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는 젓가락이 쑥 들어갈 정도로 삶아 건져내고 국물은 소금·간장·파·후춧가루로 맛을 내 차게 식힌다"고 돼있다. 쌀농사 짓기 어려운 평안도의 주력 작물 메밀을 가을에 추수해 겨울에 먹던 음식이다. 잘 끊어지는 메밀국수를 뜨거운 국물에 말면 더 먹기 어려워 찬 육수에 먹었다고 한다. 처음 먹으면 밍밍하고 심심하다. "점심에 먹으면 저녁 먹을 때쯤 생각나는 맛"이라는 표현도 있다.

▶평양 옥류관 주방장이란 자가 문 대통령을 가리켜 "평양에 와서 옥류관 국수를 처먹을 때는 무슨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고 돌아가서는 전혀 한 일도 없는 주제"라며 "몽땅 잡아다가 우리 주방의 구이로에 처넣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우리 기업 총수들이 리선권에게서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말을 들은 데 이은 '냉면 막말' 2탄이다.

▶2년 전 남북 정상이 만났을 때 문 대통령은 옥류관 냉면을 두고 “제가 늘 먹어왔던 평양냉면 맛의 극대치”라고 했다. 남북 공연 교류로 북에 다녀온 연예인들도 옥류관 평양냉면이 어떻더라 저떻더라 말을 쏟아냈다. CNN은 평양냉면 조리법을 소개했고 영국 가디언지는 “평양냉면은 평화의 상징”이라고 보도했었다. ‘맛의 극대치인 평화의 상징’에서 ‘처먹고 요사 떠는’ 음식이 된 평양냉면 신세가 딱 요즘 남북 관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