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훈(72)이 환상 문학을 처음 시도했다. 3년 만에 발표한 신작 장편 '달 너머로 달리는 말'(파람북)을 통해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다룬 역사소설로 이름 높은 작가가 처음으로 가상의 고대 국가 전쟁을 신화적 상상력으로 형상화한 것. 16일 서울 마포의 한 북카페에서 만난 작가는 "어느 특정한 역사적 시공간을 설정하지 않았지만, 인간 집단 사이에 존재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적대감의 뿌리, 이 세상의 기초를 이루는 그 야만적 폭력과 그것에 부딪쳐 무화되는 삶의 모습, 그런 야만화 과정에서 문화와 문명이 어떻게 발생하는가를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소설가 김훈은 신작 장편소설의 주제에 대해 "모든 문명의 기본 바탕은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것이지만, 그 심층엔 폭력과 야만이 들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소설은 유목민이 세운 초(草)나라와 농경민이 세운 단(旦)나라가 벌이는 전쟁을 전하는 고대 역사서의 기록에 바탕을 뒀지만, 그 책 자체가 실재하지 않는다. '바람이 들불에 일어서듯, 싸움은 초원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초군은 월도와 돌팔매, 단군은 창검을 들고 뒤엉켰다'며 간결하고 박진감 넘치는 묘사로 전개되는 허구. 그러나 판타지 같은 공상(空想) 문학은 아니다. 한반도 삼국시대의 전쟁에 대한 작가의 신화적 상상력과 해석이 깔려 있는 것. 작가는 "고구려 신라 백제는 거의 매일 싸웠다. 김부식이 '삼국사기'에 '피가 강물처럼 흘러서 방패가 떠내려갔다'고 쓰기도 했는데, 그 시대 역사적 풍경이 인간의 감성에 꽂힌 모습을 써놓은 것이라고 본다"고 풀이했다. "불교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내세운 세 나라가 그토록 피가 흐르도록 싸운 뿌리가 무엇인지 써보고 싶었다. 그런 야만의 과정에서 끝없이 짓밟히면서도 저항하는 생명의 모습도 써보려고 했다."

작가는 독특하게도 전쟁에 동원된 두 마리 말[馬]의 관점에서 인간의 야만성을 관찰하는 서사를 전개한다. 그 말들이 인간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으려는 과정도 그린다. '산맥 위로 초승달이 오르면, 말 무리는 달 쪽으로 달려갔다'면서 말을 자유로운 영혼의 상징으로 삼았다. 소설 제목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역사의 시공간을 뛰어넘으려는 생명의 초월 의지를 가리킨다.

"10여 년 전 미국 인디언 마을을 여행하다가 저녁 무렵 야생마 수백 마리가 모여 있는 것을 봤는데, 그 말들이 저마다 혼자 있는 것처럼 조용하게 있었다"는 작가는, "그 순간 내가 언젠가 저 말에 대해 뭔가 써보겠구나, 라는 모호하고도 강한 충동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한국 마사회 도서관에서 말에 관한 책을 섭렵했다. "말의 습성, 말의 역사, 말이 인간에 의해 사육된 과정, 말이 인간의 야만과 문명을 감당해 나간 과정, 고대 국가들의 신화와 미신의 파편들을 내 머릿속에 넣어서 재구성했다."

작가는 책 후기에 '세상을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서식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 소설은 그 답답함의 소산'이라고 썼다. 그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을 지워버리고 새로운 시공을 열어보려는 소망이 있을 것"이라며 "이 소설에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대립이 나오는데, 내 마음속에는 유목의 피가 흐르는지, 무의식적으로 (농경민족이 세운) 모든 건조물에 대한 불신 같은 게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소설에서 작가는 역동적이고도 감각적인 문체 미학을 현란하게 과시한다. '밤은 파랬고, 신생(新生)하는 달의 풋내가 초원에 가득 찼다. 말들은 젖은 콧구멍을 벌름거려서 달 냄새를 빨아들였고, 초승달은 말의 힘과 넋을 달 쪽으로 끌어당겼다.' 작가는 "내 언어가 서사의 전개뿐 아니라 화가가 물감을 쓰듯이, 음악가가 음을 쓰듯이, 그렇게 쓰이기를 바랐다"고 했다. 요즘의 현실에 대해선 "우리 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야만은 약육강식"이라며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약육강식을 심화하는 방식으로 전개될까 걱정되는데, 금년 여름 더위가 코로나에 겹쳐서 최하층민을 강타할 것이고, 사람들이 만원 지하철을 타고 다닐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다"며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