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이 한국에 대한 군사행동 위협 담화를 발표한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먼 나라 갈등 해결은 미국의 의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거듭 강조한 원론적 언급으로 볼 수도 있지만, 북한이 대남 군사도발을 예고한 상황에서 북한 문제가 트럼프의 관심 밖으로 멀어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 뉴욕주에 위치한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 졸업식 연설에서 "미군의 책무는 다른 나라를 재건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외부의 적(敵)들로부터 강하게 지키는 것"이라며 "많은 사람이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머나먼 땅에서 벌어지는 오래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미국 병력의 의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끝없는 전쟁의 시대를 끝내고 있다.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 대통령이 13일(현지 시각) 뉴욕주에 위치한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 졸업식에 참석해 육사 교장인 대릴 윌리엄스(오른쪽) 중장과 함께 걸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졸업식 연설에서 “적들에게 알리겠다. 우리 국민이 위협받는다면 결단코 행동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리처드 그리넬 전 독일 주재 미국 대사가 지난 11일 독일 일간 빌트지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일본, 독일 등에서 군대(미군)를 데려오기 원한다고 분명히 말했다"고 밝힌 이후 나온 것이다. 이 때문에 한미가 방위비 분담금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꺼내들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트럼프의 관심은 오는 11월 대선에서 승리하는 데 쏠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이날 연설에서 "우리의 적들에게 알리겠다"며 "우리 국민이 위협받는다면 우리는 결단코 행동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지금부터 우리가 싸운다면 우리는 단지 싸워서 이길 것"이라며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어록을 인용해 "전쟁에는 승리를 대체할 것이 없다"고 했다. 이는 북한이 미국을 겨냥한 도발을 할 경우 강력 대응하겠다는 경고의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다만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이날 김여정이 군사 위협을 한 데 대한 본지 질의에 "우리는 북한의 최근 행동과 성명에 실망하고 있다"며 "우리의 한국 방위에 대한 약속은 철통같다"고 밝혔다. 또 "북한이 도발을 피하고 외교와 협력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며 "우리는 북한에 관여하기 위해 한국과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철통 같은 방위 약속'을 거론하며 군사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미국 내에서는 북한 비핵화 협상 실패론도 커지고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전날 트위터에 "트럼프가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과 싱가포르에서 만난 지 2년이 지난 지금, 미국과 우리의 동맹은 덜 안전하고, 김정은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미 NBC방송은 이날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 2주년과 관련해 '아름다운 친서에서 어두운 악몽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도박은 어떻게 파산했나'란 기사에서 미·북 관계는 싱가포르 이전으로 원점 회귀했으며 트럼프의 위험한 노력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전문가를 인용해 북한이 트럼프의 재선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 10월쯤 도발에 나설 수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