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인 강제 노역으로 악명 높은 군함도(원명 하시마·端島) 탄광의 진실을 왜곡한 근대산업시설 전시관의 일반 공개를 15일 강행한다. 일본 정부는 2015년 군함도의 유네스코 등재 당시 '본인의 의사에 반(反)하는 한국인 강제 노역'을 인정하며 희생자를 기리는 내용이 포함된 인포메이션센터 설립을 국제사회에 약속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전시물에서 "한국인 차별이 없었다"는 증언을 소개했다.

아베 일본 총리는 2018년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이 한일 청구권 협정 위반이라며 "한국이 국제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해왔다. 그러면서 정작 유네스코에서 국제사회를 향해 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이 사안은 최악의 한일 관계를 지금보다 더 위태롭게 하는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 정부가 예산을 100% 지원하는 '산업유산국민회의'는 도쿄도(東京都) 신주쿠(新宿)구의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만든 산업유산정보센터를 15일부터 일반에 공개한다.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지난 3월 개관 후 코로나 사태로 임시 휴관에 들어갔었다.

문제의 군함도 전시관 -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 내부 대형 스크린에 한국인 강제 노역으로 악명 높은 군함도(하시마·端島)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위 사진). 군함도 등에서 생활한 사람들의 사진도 전시돼 있다(아래 왼쪽 사진). 일본은 이들 중 일부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한국인에 대한 차별 대우는 없었다”는 등 일본에 유리한 증언들을 소개했다. 아래 오른쪽 사진은 석탄 산업 등에서 이룬 일본의 산업화 성과를 홍보하는 공간이다.

일반 개관에 앞서 14일 도쿄특파원 공동취재단에 공개된 산업유산정보센터는 메이지 시대의 산업 유산 23곳을 홍보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전체 면적이 1078㎡인 이곳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군함도 관련 전시는 '존(Zone) 3'에 집중돼 있다. 이곳에 65인치 스크린 7개를 붙여서 군함도 탄광의 역사와 의의를 설명했다.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출입구 부근에 군함도의 등재 당시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에 한 '약속'을 명기해 놓았다. 그러나 정작 전시물에서는 그런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가혹한 조건하에서의 강제 노역'을 부정하는 내용을 강조했다.

재일교포 2세로 어린 시절을 군함도에서 보낸 스즈키 후미오(鈴木文雄)씨의 증언이 대표적이다. 그의 증언은 '하시마 탄광에서 일한 오장(伍長)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내용으로 전시돼 있다. 이 패널에는 스즈키씨가 "이지메 당한 적이 있느냐" "채찍으로 맞았나"라는 질문에 대해 "이지메 당한 적 없고 오히려 귀여움을 받았다" "채찍으로 때리는 게 가능하겠느냐"고 답한 것으로 돼 있다. "당시 조선인과 일본인은 모두 같은 일본이라서 차별이 없었다. 학대도 없었다"는 일본인 증언도 스크린에 흘러나왔다. 산업유산국민회의 임원이기도 한 가토 고코 산업유산정보센터장은 취재진에 "당시 탄광 노동자 중에서 학대를 받은 사람은 없다"고 했다. 이 밖에도 군함도 등에서 생활한 10여 명과의 인터뷰 영상을 통해 과거를 미화했다.

이곳은 한국인들에게 급여를 정확히 줬다는 것을 강조하듯 당시의 월급봉투를 전시해 놓기도 했다. 또 1940년대 징용령뿐만 아니라 한일청구권 협정 전문을 실어놓기도 했다.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는 당시 많은 한국인이 차별 대우를 받으며 힘든 노동에 시달렸다는 사실과는 배치되는 것으로 일본에 유리한 증언만 전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본은 일제시대 말기 군함도 외에도 나가사키 조선소, 야하타 제철소 등에 약 4만명의 한국인을 강제 동원했다.

이런 역사 때문에 박근혜 정부는 일본이 2013년 군함도를 포함한 메이지 시대의 산업혁명 유산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결정하자 반대했었다. 아베 내각이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어두운 역사로부터 눈을 돌리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베 내각은 박근혜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유네스코에서 '표 대결'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이자 자세를 낮췄다. 한국인 강제 노역을 인정하고, 이 내용이 포함된 인포메이션센터 설립을 약속했다. 1940년대 본인 의사에 반해서 일본 땅을 밟은 후 가혹한 환경에서 일하기를 강요받은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이후 지속적으로 약속을 어겨왔다. 일본 정부는 201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첫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강제 노역' 표현을 넣지 않았다. 2019년 제2차 보고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대해 유네스코는 일본의 약속 위반을 상기시키며 등재된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아베 내각의 이번 조치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교도통신은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 지배하고 있을 당시 군함도엔 많은 조선인 노동자가 무도한 대우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이번 움직임은) 과거의 사실을 덮는 역사수정주의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아베 내각이 우리나라의 반발이 예상되는 사안을 강행함으로써 양국 관계가 악화하는 것을 조장하거나 방치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외교부는 15일 주한일본대사관의 고위 관계자를 초치해 이 문제에 대해 항의하는 것은 물론 유네스코에도 이 사실을 알려 일본 정부가 전시 내용을 수정하도록 요구할 방침이다.

☞군함도

일본 나가사키 인근의 섬으로 원명은 하시마(端島). 면적 0.063㎢에 불과한 작은 섬이지만 메이지 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석탄 채취 때문에 한때 5000명이 거주하기도 했다. 한국인 징용자들이 이곳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100명 이상 사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섬 전체가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있고 멀리서 보면 군함을 닮았다고 해 군함도로 불린다. 1974년 폐광돼 무인도가 됐고 2015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