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의 역설|애덤 카헤인 지음|정지현 옮김|메디치|192쪽|1만3000원 저자 애덤 카헤인(70)은 30년 전 에너지 기업 로열더치셸 런던 본사에서 일하던 때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의 초청을 받았다. 미래의 비즈니스 환경을 예측하고 글로벌 정치·경제·사회 시나리오 만드는 일을 하던 그를 남아공 정부가 갈등 중재자로 초빙했다. 당시 남아공 백인 정부는 흑인 지도자 넬슨 만델라를 석방하고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를 끝내 민주주의로 가려는 협상을 시작하던 참이었다. 중재의 권한을 위임받은 카헤인은 케이프타운 외곽 몽플뢰르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회의에서 적대적인 두 세력을 대화와 타협으로 이끌었다. 6개월간 열린 ‘몽플뢰르 회의’는 증오하는 두 집단이 갈등을 푼 성공 사례로 남았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왼쪽) 콜롬비아 대통령과 반군 조직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지도자 로드리고 론도노 사령관이 2017년 6월 27일 평화협정 기념행사에서 '총 모양 삽'을 함께 들고 활짝 웃고 있다. 50년 내전을 종식하는 둘의 협력은 아무런 합의 없이 개최한 1996년 보고타 회의에서 시작됐다.

카헤인은 이를 계기로 리오스파트너스라는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고 글로벌 갈등 조정 전문가로 나선다. 심각한 내전을 겪는 콜롬비아, 친정부와 반정부로 갈라져 유혈 시위로 번진 태국 등으로 날아가 갈등과 분쟁을 조정하는 데 힘을 더했다. 책의 원제는 '적과 협력하기(Collaborating with the Enemy)'. 생각도 다르고, 좋아하지도 않고, 신뢰도 할 수 없는 이들과 함께 일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선 협력의 개념을 달리 생각하라고 주문한다. "정말 같이 일 못 하겠네!"라고, 협력이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협력이란 말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로 같은 방향을 보면서 목적과 달성 방법에 관한 생각이 일치해야만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런 가정은 틀렸다는 것. 이런 전통적 협력 개념에서는 상대를 강제로 바꾸려 하거나 상대를 적(敵)으로 여기는 '적화(enemyfying) 증후군'만 나타날 뿐이다.

협력은 언제나 복잡하고 논쟁적인 상황에서 시작한다. 당사자들은 해결책은 물론이고,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합의하지 못한 상태다. '나는 맞고 남은 틀린다'고 주장하면 건설적인 협력이 아니라 퇴행적인 강요로 이어진다. 합의는 협력의 전제가 아니라 협력의 결과다. 서로 다르고 분열해 있기 때문에 협력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협력 개념을 '스트레치(뻗기) 협력'이라 지칭한다.

저자는 '스트레치 협력'의 주요한 사례로 콜롬비아 사례를 든다. 콜롬비아는 1960년대 이후 내전으로 수십만 명이 죽고 수백만 명의 국민이 나라를 떠났다. 1996년 젊은 정치인 후안 마누엘 산토스가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협력을 모색했다. 남아공을 방문해 만델라 대통령을 만나고 '몽플뢰르 회의' 방식이 콜롬비아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산토스는 저자 카헤인을 초청하고 수도 보고타에서 대립하는 세력이 모이는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는 군 장성, 좌·우파 정치인, 교수, 기업 총수 등이 참석했다. 반군 조직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지도자도 은신처에서 무선 통신 장치로 함께했다. 이 회의에서 '데스티노콜롬비아'라는 협력 프로젝트 팀 발족을 합의했다. 조직위원회에는 군 장교, 게릴라 대원, 무장혁명군 대원, 기업인, 노동조합원, 학자, 언론인, 청년 등 42명이 참여했다. 처음엔 아무 합의 없이 회의를 진행했는데 여러 차례 회의를 거듭하면서 놀랍게도 의견 차이를 보였던 사람들이 나라를 위한 계획을 함께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프로젝트를 주도한 산토스는 2010년 대통령에 당선됐고, 2016년 FARC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산토스는 그 업적으로 그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데스티노콜롬비아 프로젝트는 세 가지 점에서 '스트레치 협력'의 전형적 사례라고 저자는 말한다. ①처음부터 어떤 해결책에도 합의하지 않았다. 다만 합의한 것은 콜롬비아가 문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뿐이었다. ②미래에 대한 여러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그 시나리오 중 현재 상태를 그대로 두는 시나리오만은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했다. ③서로 원하는 목표가 달랐기 때문에 상대를 바꿀 수 없는 상태로 협력했다.

저자는 개인·기업·국가에서 “정반대의 관점을 가진 사람과도 함께 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쉽지는 않다. 미워하고 신뢰도 없는 상대와 인내심을 가지고 만남을 지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만나야 한다. 협력을 뜻하는 영어 단어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은 ‘함께 일하다’란 뜻이지만 ‘적에게 협조하다’라는 뜻도 있다. 대립과 갈등이 점차 심해지는 우리 사회에서도 상대를 인정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협력의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