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슬리퍼 신고 뛰쳐나온 아이 - 지난달 29일 경남 창녕군의 편의점에서 잠옷을 입고 어른 슬리퍼를 신은 A(9)양이 최초 경찰 신고자와 대화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발견된 A양은 눈가에 멍이 들고 곳곳에 상처가 있는 등 학대 정황이 뚜렷했다.

법무부는 아동 폭력·학대 사건의 꾸준한 증가세를 막기 위해 자녀에 대한 체벌 금지 조항을 민법(民法)에 명문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10일 밝혔다. 현행 민법 915조 징계권(懲戒權) 조항은 친권자가 미성년 자녀를 보호·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법무부는 '훈육'의 의미가 담긴 이 조항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체벌을 허용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고 보고 '체벌은 부모의 징계권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별도 조항을 신설할 방침이다.

◇훈육 핑계로 학대 정당화 못 하게 돼

법무부는 '자녀 체벌'에 대한 처벌 조항은 민법에 따로 넣지 않기로 했다. 아동에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에 대해선 현행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에 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을 통해서도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법 개정이 가져올 효과에 대해 법조인들은 "아동 폭력 사건에서 '훈육'을 핑계로 아동 폭력을 정당화할 근거가 없어지게 된다"고 했다. 최근 여행 가방에 9세 아이를 가둬 사망하게 한 계모도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서"라며 '훈육' 차원에서 한 행동이란 식으로 주장했다. 진형혜 변호사는 "그런 식으로 민법이 아동 학대를 정당화하는 빌미가 돼선 안 된다는 게 이번 법 개정 추진의 배경"이라고 했다.

법무부는 징계권 자체를 삭제할 것인지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이다. 법무부 내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의 윤진수 위원장은 본지 통화에서 "'징계권' 자체를 없앨 경우 부모의 훈육권을 부인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는 만큼, 자녀를 타이르는 정도의 권한을 규정하는 '훈육권'으로 대체하는 등의 방법도 있다"고 했다.

이 같은 고민은 '징계권'에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친권의 일부인 징계권은 단순히 '체벌 권한'만을 규정한 게 아니라 '훈육'의 의미도 담고 있다. 민법은 부모가 자녀를 보호하고 교양할 권리 의무도 규정하고 있다.

◇꿀밤 한 대도 체벌? 논란 분분할 듯

'체벌 금지'가 민법에 명문화되면 체벌은 위법한 행위가 된다. 민법상 손해배상 대상이 되거나, 양육권 다툼이 있을 경우 체벌을 한 부모는 불리해질 수 있다. '체벌'의 의미를 두고도 부모들은 혼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꿀밤 한 대가 체벌인가' '벽 보고 손들기도 체벌인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2018년 7월 천정배 당시 민주평화당 의원은 '폭행이나 상해 등은 부모의 징계권 범위에서 빼야 한다'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냈다. 그러나 법안 논의 과정에서 어디까지를 합리적인 훈육으로 볼지를 놓고 의견이 갈렸다.

아동 단체들은 민법 개정을 환영하고 있지만 일각에서 "과도한 국가 간섭"이란 비판도 나온다. 법으로 무조건 체벌을 금지하는 것은 부모의 교육권 침해라는 주장이다.

"부모로선 자녀의 행위에 '무한 책임'을 지면서도 통제할 방법이 사라졌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민법은 미성년 자녀가 저지른 잘못은 부모가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아이들이 불장난하다 남의 물건을 태우거나 다른 아이를 때린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지 않도록 가르치는 게 부모의 의무이고 그 일부가 징계권이다. '체벌'이 몽땅 위법 행위로 간주되는 상황이 온다면 부모로선 훈육의 방법을 완전히 달리할 수밖에 없다. 배인구 변호사는 "앞으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 바람직한 훈육의 수단 등을 놓고 사회적으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