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연구원이 실험용 쥐를 바라보고 있다. 최근 생의학 연구 논문의 절반이 동물실험에서 암수를 모두 조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0년 전보다 두 배로 증가한 수치다.

실험실에서 남녀 차별이 10년 사이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실험동물이다. 생명과학과 의학 연구에서 암수 실험동물을 모두 사용한 논문이 거의 배로 늘었다는 것이다.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워토위치 교수 연구진은 9일(현지 시각) 국제학술지 ‘이라이프(eLife)’에 “2009년 생의학 연구에서 28%만 실험에 암수 실험동물을 이용했는데 2019년에는 그 비율이 49%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암수 모두 실험한 연구 10년 새 배로 늘어

생의학 논문의 동물실험에 나타난 성차별. 붉은색은 수컷만 실험한 논문, 주황색은 암컷만, 파란색은 암수 모두를 실험한 논문이고 회색은 성별을 표시하지 않은 것이다. 10년 사이 암수 모두를 조사한 논문이 배로 늘었음을 알 수 있다.

2009년 생의학 10개 분야를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논문 841편 중 28%만 동물실험에 암수를 모두 포함한 것으로 나왔다. 33%는 수컷만, 23%는 암컷만 실험에 이용했다. 16%는 실험동물의 성별을 밝히지도 않았다. 이 결과는 2011년 국제학술지 ‘신경과학과 생물행동 리뷰’에 실렸다.

워토위치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2009년 조사에서 나왔던 동물실험의 성 편견이 아직도 강한지 알아봤다. 생의학 9개 분야에서 나온 논문 720편을 조사한 결과 거의 절반인 48%가 동물실험에 암수를 모두 조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컷만 나온 논문은 27%로, 암컷만 나온 논문은 18%로 각각 떨어졌다. 실험동물의 성별을 밝히지 않은 논문은 6%에 불과했다.

특히 동물 행동 연구 논문은 81%가 암수를 모두 연구했다. 전반적으로 9개 연구 분야 중 6개 분야에서 동물실험에 암수를 모두 포함하는 연구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실험서 수컷만 선호하다 약물 부작용 낳아

생명과학 연구실은 오랫동안 동물 실험에 대부분 수컷을 썼다. 암컷은 발정 주기 때 호르몬 변화가 심해 실험에 영향을 주기 쉽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이는 때로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1997~2000년 미국에서 치명적인 부작용으로 10종의 의약품이 회수됐다. 이 중 8종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온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 실험 단계에서 암수를 골고루 썼다면 예방할 수도 있었던 일이다.

2016년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부작용이 보고된 약물 668개 중 307개에서 성별(性別) 부작용 차이가 있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최근 과학계에서는 연구에서 벌어지는 성차별을 없애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2016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생물학적 변수로서 성’이라는 정책을 만들었다. NIH 연구비를 받는 연구라면 다른 강력한 정당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반드시 동물실험에 암수를 모두 포함하도록 했다. 암컷 실험동물이 더 변화가 심하다는 말도 근거가 없다는 연구결과들이 잇따랐다.

물론 문제는 남아 있다. 암수 한쪽 실험동물만 쓴 연구자들은 왜 그렇게 했는지 여전히 밝히지 않았다. 또 암수 실험동물을 모두 조사한 연구조차 실험결과의 성별 차이를 분석하지 않았다. 무늬만 성 평등 연구이지 내용에서는 아직도 예전과 같은 수준이라는 말이다.

◇미국·유럽에선 연구자의 성비 균형도 요구

자동차 충돌실험. 과거에는 남성 인형만 썼지만 최근에는 남녀와 어린이 인형까지 모두 쓴다.

실험실의 성차별은 생명과학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공학 연구도 마찬가지다. 한때 자동차업체는 충돌 실험에 남성 인형만 썼다. 이러면 남성보다 몸이 작고 뼈가 약한 여성은 실제 자동차 사고에서 더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연구 과제를 선정할 때 연구자의 성비(性比)까지 맞추기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실험동물뿐 아니라 연구자의 성에 따라서도 실험 결과가 달라진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남자 연구원이 있으면 쥐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가 늘어 통증 반응을 알아보는 실험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한다. 국제 학술지들도 같은 이유로 논문에 연구 대상뿐 아니라 연구자의 성까지 밝히도록 권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