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영장 실질 심사가 열린 8일, 변호인단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한승(57·사진) 변호사였다. 구속되느냐 마느냐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를 추가 투입한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혼 소송 중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도 지난달 2차 변론을 앞두고 기존 변호인단을 사임시키고 한 변호사로 교체했다. 한 변호사가 어떤 인물이기에 삼성·SK 두 재벌가 오너의 재판에 변호인으로 긴급 등판했을까.

전주지법원장으로 있던 한 변호사는 올 2월 법복(法服)을 벗었다. 그의 사직은 판사들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법원 내에서 "한승은 숨만 쉬고 지내도 대법관이 될 사람"(고법 부장판사)이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법원장 출신 한 변호사는 "재판과 사법행정 둘 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며 "권순일 대법관 정도를 제외한다면 현직 판사 중 가장 법리(法理)에 밝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그의 능력은 이력에서 드러난다. 그는 1988년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수료했다. 평판사 때 법원의 인사·예산 등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의 기획조정심의관, 인사심의관으로 선발돼 일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 때인 2005년 '대법원장 비서실 판사'가 신설됐을 때 '1호'로 발탁된 인물도 그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때도 행정처 요직에서 일했고, 대법원 상고심(3심) 실무를 총괄하는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으로도 근무했다. 당시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일했던 한 판사는 "한 수석님이 법리적 의견을 말하면 당연히 맞겠거니 하고 그에 기초해 검토 보고서를 썼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 내 엘리트 법관 모임인 민사판례연구회 소속이었다.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원이기도 했다. 그는 진보 성향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법연구회에 가입한 것은 이 연구회 창립 멤버인 이광범 변호사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모두 호남 출신으로, "한승은 이광범의 직계이자 오른팔"이란 평이 있다. 이광범 변호사는 초대 공수처장 유력 후보로 꼽힌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삼성이 그를 선임한 것은 유능한 전관(前官)이라는 이유 외에 그가 가진 친(親)정권 성향의 '우리법연구회 인맥'과 '호남 인맥'도 감안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2017년 불거진 양승태 대법원의 권한 남용 의혹에 연루되면서 기세를 잃기 시작했다. 그는 양승태 대법원에서 사법정책실장으로 일하면서 상고 법원 도입 문제를 다뤘다.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이 사건을 '사법 농단'으로 규탄하면서 현 사법부의 주류로 성장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 연구회 회장 출신이다. 김 대법원장은 올해 초 사석에서 한 변호사를 거론하며 "사법 농단 사건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며 강한 반감을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말이 한 변호사가 사표를 낸 계기였다는 관측이 많다. 그러나 한 법원 관계자는 "김 대법원장은 한 변호사의 사표 소식을 듣고 만류했다"고 말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측에서도 그를 곱지 않게 보는 기류가 있다. 한 변호사가 이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문제가 된 사건은 내 소관이 아니어서 나는 모른다"는 취지로 진술했기 때문이다. 전·현 대법원장 양측 모두 그를 탐탁지 않은 인물로 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