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

방탄소년단(BTS)의 인기가 블랙핑크와 레드벨벳 같은 걸그룹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들이 참여한 싱글들이 세계 시장에서 잇따라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K팝의 세계 진출에서 마지막 난관은 인종이나 국적이 아니라 '언어'였다. '언어 장벽'을 먼저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K팝은 봉준호 감독의 선배라고 부를 수 있다.

예전에는 아시아 가수가 미국이나 세계 음악 시장에 진출하려면 반드시 영어 음반을 내야 한다고 여겼던 때가 있었다. 1980~90년대 일본의 J팝이 대표적이다. 한국도 처음엔 흡사한 전략을 택했다. 소녀시대는 싱글 '더 보이즈(The Boys)'를 한국어·영어 두 버전으로 발매하고 미국 시장에서 프로모션 활동을 벌였다. 원더걸스와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BTS를 비롯해 블랙핑크·트와이스 등 최근 K팝 가수들의 노래는 대부분 한국어다. 2012년 세계를 강타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 이후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BTS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방시혁 대표는 "미국 프로듀서에게 받은 노래를 영어로 부른다면 그것은 이미 K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해외 팬들이 K팝에 대해 원하는 바를 정확히 간파한 발언이다.

글로벌 음악팬이 K팝처럼 비영어권 음악에 관심을 갖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영미(英美) 중심의 글로벌 음악과 차별적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문화 중에서도 음악은 세계화가 철저하게 이뤄졌다. 악기 구성과 멜로디, 리듬 패턴 같은 음악 요소는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스타일이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특히 인터넷의 확산 덕분에 영미권과 다른 지역에서 유행하는 음악의 시차(時差)도 거의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K팝은 전자댄스음악(EDM)·힙합·흑인음악 등 최신 음악 트렌드를 발 빠르게 반영하면서도 화사한 색감의 뮤직비디오나 '칼 군무'를 덧붙여 차별화에 성공했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요소가 한국어 가사다. 뮤직비디오와 칼 군무, 한국어 가사라는 세 가지는 K팝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K팝 가수들과는 달리 혁오·백예린·림킴과 같은 한국 가수들은 반대로 영어 앨범을 통해 국내 팬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는다. 한국어 노래를 선호하는 해외 K팝 팬들과 한국 가수가 부른 영어 노래에 호응하는 한국 팬이라는 이질적 현상이 공존하는 것이다. 이는 세계(글로벌)와 지역성(로컬)을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현재 'Z세대'의 문화적 취향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