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임대성(52)씨는 6·25 참전용사의 묘지에서 우연히 군번줄을 발견했다. 녹슬고 빛바랜 은색 쇳조각에는 군번과 함께 알파벳으로 ‘LEE JONG HAK’ 10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근처에 있던 묘지 주인의 이름은 아니었다.

6.25 전쟁 참전용사인 故 이종학 일병의 군번줄

“찾아주자”고 결심한지 10년 만인 지난 5월 19일, 임씨는 6·25 전쟁에서 순직한 고(故) 이종학 일병의 아들 이승호(69)씨에게 부친의 군번줄이 담긴 액자를 전달했다. 67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를 품에 안은 이씨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고 이종학 일병의 군번줄은 지난 2010년 경북 영양군에 위치했던 6·25 전쟁 참전용사 고 김헌창 일병의 묘지를 서울 현충원으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현충원 이장은 당시 예비군 면대장이었던 임대성씨가 주관했다. 후손을 남기지 않은 형의 묘지가 무연고 산소가 될 것을 걱정한 김 일병 동생의 요청 때문이었다.

이장을 하면서 기존의 묘를 파고 유골함을 열자 군번줄이 두개 나왔다. 하나는 김 일병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종학’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군번줄이었다. 김 일병의 동생도 “처음 듣는 이름”이라고 했다.

군번줄을 받아든 임대성씨는 그날부터 주인을 찾았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담당부서를 몰라 국방부와 육군의 각 부서에 전화를 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주인을 찾는 과정에서 집안일과 이사 등 개인 사정이 겹치자 한동안 작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육군본부 산하 유가족 관리부서와 전화가 닿으면서 수색의 실마리가 풀렸다. 이름과 군번을 확인한 육군본부 측에서 “등록되신 분이 맞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군번줄의 주인은 지난 1953년 2월 18일 국군 6사단 2연대 소속으로 참전한 고 이종학 일병이었다. 이 일병은 그해 12월 10일 부상을 입고 경주에 있던 국군 18육군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27세의 나이로 순직해 현충원에 안장됐다. 대략적인 정보를 확인한 임씨는 국가보훈처를 통해 이 일병의 유가족 이승호씨를 찾을 수 있었다.

지난 5월 19일 경북 청도에서 故 이종학 일병의 아들 이승호(사진 왼쪽)씨에게 임대성(사진 오른쪽)씨가 군번줄이 담긴 액자를 전달하고 있다.

임대성씨는 군번줄과 함께 이종학 일병의 참전 이력이 담긴 종이를 액자에 넣어 아들 이승호씨에게 전달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유품도 없었던 이승호씨에게 군번줄이 담긴 액자는 처음으로 가져보는 아버지의 물건이었다. 이씨는 “며칠을 액자를 품고 잤다”면서 “지난해 별세하신 어머니께서 조금만 더 오래사셨다면 이 기쁜 날을 함께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승호씨는 6월 중으로 군번줄이 담긴 액자와 함께 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아버지를 뵈러 갈 예정이다. 지난 67년간 이씨는 아버지가 현충원에 안장돼 있다는 사실을 몰라 집 앞 마당에 작은 가묘를 만들어 추모해왔다.

임대성 육군 제50사단 경산시 서부 1동대장은 지난 1993년 ROTC 31기로 육군 장교에 임관해 15년간 복무한뒤 예비군 지휘관으로 임용됐다. 임씨의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했고 딸도 육군 장교로 임관한 3대가 군인 집안이다.

임씨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을 누군가는 반드시 기억하고 보답한다는걸 알게해주고 싶었다”면서 “참전용사의 헌신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리는게 후손의 의무”라고 했다.